[사설] 2등 항공국에 3등 정부인가

중앙일보

입력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결국 우리나라에 항공 낙후국인 2등급 판정을 내렸다.

미측의 지난달 2차 점검 때 기준미흡의 평가를 받고 최악의 사태는 모면해 보겠다며 부산을 떨었으나 한가닥 기대마저 물거품이 됐으니 한심하고 창피스러울 뿐이다.

한국의 항공 위험국 전락은 항공행정의 총체적 부실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동안 국내외의 잦은 비행사고도 그렇거니와 항공안전에 대한 경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에도 이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로부터 비슷한 지적을 받았고 그 뒤에도 미측으로부터 계속된 점검이 있었으나 안이한 대처가 화를 부르고 말았다.

미측의 주요 지적사항이던 항공 전문인력 충원만 해도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는 물론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도 협조를 않다가 2차 점검이 코앞에 닥쳐서야 채용공고를 내고 4일 만에 항공국 직원 45명을 뽑는 소동을 벌였으니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미측은 최종 판정의 미달사항으로 특히 항공 전문인력의 훈련 미흡과 항공법 개정의 부진을 지적했다고 한다.

건교부는 이에 대해서도 법안처리에 늑장을 부린 국회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으나 정쟁에 파묻혀 할 일을 외면한 정치권도 한심하지만 그렇다고 건교부의 책임이 가벼워질 수는 없다.

이번 항공 낙후국 판정으로 국가적 이미지 실추는 물론 항공사 손실도 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미국 신규취항과 증편은 물론 미국 항공사와의 편명공유(코드 셰어)도 제한받게 된다. 이미 양쪽 항공사의 손실만 연간 2천2백억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오고 목전에 닥친 월드컵 관광객을 외국 항공사에 고스란히 내줄 것도 뻔하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서둘러 지적사항 개선 재판정을 받으면 6개월 안에 등급이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아직은 희망사항이다.

이번 사태만큼은 반드시 철저한 책임을 묻고 징계가 선행돼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마저 제대로 못 고친다면 2등 항공국이란 불명예를 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 또한 3등 정부임을 세계에 알리는 꼴이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