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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관광객 160명 노숙사건, 무슨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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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울릉도는 왠지 망설여지는 여행지다. 여행에 이골이 난 여행기자여도 울릉도라면 일단 심호흡부터 한다. 비행기 두어 번 갈아타야 하는 이국의 오지도 아닌데, 울릉도 하면 미간이 찌푸려진다. 물론 “국내 다른 여행지에선 찾아보지 못한 이국적이고 산뜻한 여행을 했다”며 한껏 만족하는 이들도 많지만, 아래와 같은 일들도 심심찮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오후 6시쯤 울릉도 저동항. 관광객 160여 명이 여객터미널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후 3시30분 강릉행 여객선이 2시간 넘도록 출발하지 못한 이유를 따지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기자도 현장에 있었다. 그들과 같은 처지였지만, 으레 그러려니 하고 체념한 상태였다. 강릉행 여객선은 원래 출발시각보다 3시간 가까이 늦은 오후 6시20분쯤 저동항을 출발했다. 그러나 배를 탄 사람은 수십 명에 그쳤다. 여객터미널에서 농성 중이던 160여 명을 섬에 놔두고 떠나버린 것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정은 이랬다. 그날 오후 3시30분 강릉으로 출발하려던 배가 이날 오후 갑자기 독도 관광에 투입됐다. 독도 유람선이 고장나는 바람에 배를 교체한 것이다. 강릉행 관광객에게 독도 유람선이 고장난 것은 전혀 무관한 일이다. 그러나 선사는 일방적으로 배를 교체했고 강릉행 관광객은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농성하던 이들이 울릉도에서 나온 시간이 22일 오전 2시45분이란 사실이다. 원래 일정보다 35시간15분 더 울릉도에 갇혀 있었다. 중간에 나오고 싶어도 배편이 없어 못 나온다. 숙소? 울릉도 하루 수용인원은 5000명 정도다. 화창한 가을 주말 울릉도에 빈 방이 있을 리 만무했다. 보상을 얼마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이틀 가까이 울릉도 여객터미널에서 노숙자처럼 살았다.

두어 시간 배가 늦었다고 농성을 벌인 건 심하지 않나, 늦게나마 편성된 배는 왜 안 타고 울릉도에서 사서 고생을 하나. 이런 식으로 그들을 탓할 수도 있겠다. 하나 울릉도에선 이런 사고가 다반사라는 게 여행업계 얘기다. 날씨 때문만이 아니다. 울릉도에선 ‘현지 사정’, 즉 선사 사정, 여행사·민박집·식당의 사정이 관광객의 사정보다 더 우선할 때가 많다.

섬에서 나가는 수단을 독점한 선사의 태도는 마치 “너희들이 기다리지 않으면 어쩔 건데”라고 하는 것 같다. 관광객 입장에선 도리가 없다. 불편하고 억울해도 참아야 한다. 울릉도 관광객은 지난해 35만 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40만 명 돌파가 예상된다. 그러나 관광 인프라는 한참 열악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국토 끝 섬 관광자원화 사업’을 재개했다. 이 중에는 독도 관광 활성화도 끼어 있다. 사업 계획 대부분이 스토리텔링 강화와 콘텐트 구축에 몰려 있다. 다 좋다. 그러나 독도 관광 활성화는 결국 울릉도 관광 활성화다. 독도에 들어가는 유일한 수단이 울릉도에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 관광 수준부터 올려야 하지 않을까.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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