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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루스벨트’ 꿈꾸는 오바마 앞길은 캄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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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호된 재선 신고식을 치렀다. 7~8일 사이 뉴욕을 비롯해 글로벌 증시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다우지수는 312포인트(2.4%)나 추락했다. 최근 1년 새 최대 하락이다. 시장이 오바마 재선을 달가워하지 않은 것일까. 그런 해석이 무리는 아니다. 골드먼삭스와 JP모건 등 월가의 금융 공룡들은 이번 대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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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선거 결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Gridlock)이 심해졌다”며 “재정 절벽(Fiscal Cliff)이 해결될 확률이 더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의회 선거 결과를 두고 한 말이다. 미 의회 의석 분포는 선거 전과 거의 같다. 여전히 상원은 민주당, 하원은 공화당 수중에 있다. 특히 교량 역할을 해줄 중도 성향 의원층이 엷어졌다는 분석이다. 오바마가 부자 증세를 추진하기도, 공화당이 전면 감세를 관철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존 베이너 미국 하원의장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회견에서 ‘재정 절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워싱턴 신화=뉴시스]

 게다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경제정책 차이는 최근 30년 새 가장 크다. CNBC는 “두 당이 이데올로기 전쟁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고 묘사했다. 타협을 더욱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오바마-공화당이 치킨게임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 그 바람에 감세 중단 등으로 6000억 달러(약 660조원)짜리 자동 긴축이 시작될 수도 있다.

 지금의 미국은 1936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재선됐을 때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여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업률이 10%를 넘는 상황이었지만 미 국민은 루스벨트에게 몰표를 줬다.

 이번 미 대선에서 ‘앙코르 1936년(Encore 1936)’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바마가 정신적 스승인 루스벨트처럼 재선에서 압승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오바마-루스벨트의 처지는 비슷했다. 대공황 이후 회복 불씨를 지피던 미 경제는 36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추락할 조짐을 보였다. 그 바람에 루스벨트는 뉴딜이 실패했다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루스벨트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2차 뉴딜을 선언했다. 1차가 응급처방인 반면 2차는 노동권 강화, 연방 복지시스템 구축 등 좀 더 진보적인 정책이었다. 공화당은 2차 뉴딜이 ‘빨갱이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36년 11월 3일 경쟁자인 앨프리드 랜던 공화당 후보에게 단 2개 주만 내주는 압승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당의 상·하원 지배력도 더 확고해졌다.

 월가가 달가워하지 않은 루스벨트의 재선이었지만 선거 직후 주가는 오름세였다. 당시 시장 참여자들이 의석 분포를 보고 루스벨트가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 있어서였다. 실제 루스벨트의 2차 뉴딜은 순조롭게 추진됐다. 심지어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공공기관으로 만들어 연방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뒀다. 당시 NYSE는 반(反)루스벨트 세력의 아지트였다. 제압당한 월가는 루스벨트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JP모건 등이 앞장서 노동조합과 경영진의 타협을 이끌어냈다.

 지금 오바마는 루스벨트와 같은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2기 경제정책을 위해선 사사건건 공화당과 협상에 매달려야 할 형편이다. 오바마가 ‘정치적 미로’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 셈이다. 바클레이스의 투자 전략가인 배리 내프는 “시장 참여자들이 긴장하고 안전지대(국채 매입)를 향해 줄행랑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평했다.

 희망적인 조짐이 있긴 하다. 공화당 소속인 하원 의장 존 뵈너가 7일 “오바마의 제안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협상의 뜻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뵈너는 “부자 증세엔 동의하기 어렵다”고 조건을 달았다. 타협이 쉽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로이터통신은 “올 연말 재정 절벽을 피하기 위해 오바마와 공화당이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6개월~1년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데 합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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