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 여론조사만으로 단일화하면 100만 명이 뽑은 민주당 후보는 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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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문재인 민주통합당·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 측이 ‘게임의 룰’을 놓고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합의문을 통해 “단일화 추진에 있어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양측이지만 막상 협상국면이 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문 후보 측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은 7일 의원총회에서 “전날 후보 간 합의문은 너무 추상적 원칙만 있다”며 “세 가지 방안과 원칙이 정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단일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 단일화, 국민과 통합하는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3원칙 중 ‘국민 참여 보장’은 ‘모바일경선’을, ‘국민의 알권리 충족’은 TV토론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상 단일화 룰에 대한 언급이다. 그런 문제는 ‘새정치 공동선언’으로 명분을 만든 뒤 논의해야 한다는 안 후보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후보 간 합의정신에 따라 ‘새정치 공동선언’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내부에선 불쾌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핵심 관계자는 “제3자가 ‘단일화 원칙’을 제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 측 입장을 모를 리 없는 김 위원장이 작심한 듯 게임의 룰 문제를 지르고 나온 이유는 일단 ‘협상력 제고’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룰 협상 전부터 여론조사 경선을 기정사실화해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인 듯하다.

 문 후보 측이나 안 후보 측이나 담판이 아닌 경선으로 단일화를 할 경우 일단 여론조사는 ‘부동(不動)’으로 간주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에 어떤 방식을 더하느냐다. 민주당으로선 전국 조직을 활용할 수 있는 모바일경선을 여론조사와 병행해 실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수밖에 없다. 한 핵심 관계자는 “100만 선거인단이 참여해 뽑은 당 대선 후보를 기껏 수천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서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하면 당장 그들부터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안 후보 측 입장에선 모바일경선이 부담스럽다. 전국적인 민주당 조직을 당해 낼 재간이 없을 거라고 본다. 한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 대선 경선 때 불거졌던 모바일 후유증이 단일화 국면에서도 재연된다면 대선은 해보나마나”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의 ‘국민 참여 보장’ 요구가 단일화 룰의 쟁점이 된다면 협상은 난항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협상팀은 싸우고, 두 후보가 ‘대승적 결단’을 내리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신계륜 의원은 “협상팀 없이 두 후보가 단독으로 만나 실무협상까지 전격 처리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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