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김떡순과 이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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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서울 종로 3가부터 5가로 이어지는 먹거리 노점에는 독특한 메뉴가 있다. 떡볶이·튀김·순대를 적당히 섞어 1인분으로 구성한 ‘김떡순’ ‘떡순’ 같은 것들이다. 주인에게 물으니 “혼자 왔어도 두세 가지씩 맛보고 싶어 하는 손님들이 있어 만들었는데, 인기가 많다”고 했다.

 이동통신 3사인 SK텔레콤·KT·LG유플러스도 음성통화·데이터·문자메시지 세 제품을 묶어 정액요금제로 팔지만 종로 거리 김떡순과는 사뭇 다르다. 요금제에 따라 ‘음성 150분, 문자 200건, 데이터 100메가바이트(MB)’ ‘음성 650분, 문자 650건, 데이터 14기가바이트(GB)’ 식으로 이통사가 정한 조합대로만 판다. ‘음성통화 많이, 데이터 조금’이나 ‘음성통화 조금, 데이터 많이’ 식으로는 못 쓴다. 튀김 10개 먹고 싶으면 떡볶이 10인분도 같이 사야 하고, 남으면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자 3000만 명 중 92%가 이런 요금제를 쓴다.

 게다가 김떡순은 표시한 가격대로 파는데 정액요금제는 ‘이름 따로, 가격 따로’다. 3G ‘34요금’의 실제 내는 돈은 3만4000원이 아니라 2만3000원이다. 24개월 약정을 하면 매월 일정액을 깎아 줘서다. 같은 식으로 ‘LTE62’ 요금제는 실제로 4만6000원이다. 깎아 주는 데 무슨 문제냐고? 단말기 할부와 약정 할인을 복잡하게 엮어 놓으면 소비자는 자기가 기기 값과 분당 통화료로 얼마를 내는지 알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이통사는 요금을 올려놓고 시침을 뚝 뗄 수도 있다. 이통사는 LTE의 약정 할인금을 3G보다 30~40%씩 덜 주고 제공하는 통화량도 20~30분씩 줄였다. 그 결과 1분당 통화요금은 최대 40% 올랐다. 대다수 소비자는 눈치도 못 챈다. 통신사들은 “LTE는 3G와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인데 요금이 같을 수는 없다”고 해명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소비자에게 정보는 제대로 줘야 했다. “3G보다 투자비가 많이 들어 요금을 이만큼 올렸으니 고품질 서비스를 원하는 분은 쓰시라”고 말이다.

 이런 내용을 지적한 ‘통신 과소비 부추기는 한국’ 시리즈(본지 11월 5, 6일자 각 8면)는 독자들이 단 댓글만 수백 개에 달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휴대전화는 이미 전 국민이 쓰는 생활 필수품이다. 국내 이동통신요금은 외국에 비해 높은 수준은 아니다. 이통사들이 통신비 인하 요구가 나올 때마다 “억울하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쓸데없는 고가의 정액요금제와 복잡한 약정할인을 묶어 통신정보에 어두운 소비자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과소비를 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소비자 편에서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종로 거리 떡볶이 집에라도 가서 배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