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검증서 위조한 원전 부품, 10년간 아무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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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原電) 부품’ 관리에 10년간 구멍이 뚫렸지만 독립적인 안전규제 당국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도, 원전산업정책 책임자인 지식경제부도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문제가 드러난 것은 짝퉁 부품과 중고 부품 납품비리 사건과 마찬가지로 외부 제보 덕분이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5일 ‘품질검증서’를 위조해 수입한 원자력발전소 부품이 2003~2012년 국내 5개 원전에 공급됐다고 발표했다. 해당 부품이 대거 투입된 전남 영광 5·6호기 원전은 이날부터 가동을 멈추고 연말까지 부품을 전면 교체하기로 했다. 원전 2기가 한꺼번에 정지되면서 올겨울엔 사상 유례없는 전력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과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8개 납품업체가 10년간 제출한 해외 기관의 ‘품질검증서’ 60건이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지난 9월 외부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해당 부품은 퓨즈·온도스위치·냉각팬 등 237개 품목의 7680여 개에 달했다. 위조 부품은 고리·월성·울진·영광 등 국내의 4개 원전 본부에 공급됐지만 부품이 사용된 곳은 영광 3~6호기와 울진 3호기 등 5개였다. 특히 실제 사용된 부품 5200여 개 중 98%가 영광 5·6호기에 집중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홍 장관은 “해당 부품은 핵연료 관련 설비 등 원자로 핵심 장치엔 쓰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전 안전과 직결되는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운전설비가 아니라 보조설비에 설치된 만큼 방사능 누출 위험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정부의 대응이 안이하다”고 질타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제어계통에 문제가 생겨 외부전원이 끊기고 디젤발전기가 물에 잠기면서 난 사고”라며 “이번에 위조된 품질검증서를 사용한 부품 대부분이 이 제어계통에 사용되는 부품”이라고 말했다.

 원안위는 이날 한수원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보고받고 원전에 공급된 미검증 품목의 전수조사를 한수원에 지시했다. 원안위는 투명한 조사를 위해 ‘민관합동조사단’을 조속히 구성하 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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