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마트폰 역수입해 쓰니 절약되는 비용이…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스마트폰이 고장 나 바꿀 때가 된 김모(45)씨는 일정 관리를 겸하기 위해 5인치 이상의 화면과 글씨를 쓸 수 있는 스타일러스 펜을 갖춘 제품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무선 인터넷으로는 웹 검색, 카카오톡 정도만 하기 때문에 비싼 LTE는 필요 없었다. 갤럭시노트2나 옵티머스뷰2가 이 조건에 맞았다. 해외 인터넷 쇼핑사이트를 찾아보니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갤럭시노트2의 3G용 16GB 모델을 692달러(약 74만원)에 팔고 있었다. 여기에 배송료와 관세 10%를 합해도 총 비용은 84만원. 국내 LTE 모델(32GB 109만원)보다 25만원이 쌌다. 또 음성 500분을 주는 4만4000원짜리 알뜰폰 요금제에 가입하니 국내 LTE용 단말기를 구입해 LTE 정액요금제를 쓸 때보다 매월 2만9445원을 아낄 수 있었다. 24개월 내에 해지할 경우에도 위약금이 없는 것은 덤이다.

 국내 소비자들이 ‘통신 과소비’에 젖고 있다. 휴대전화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이 단말기와 요금제 모두에서 과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통신 과소비의 첫째 요인은 ‘고용량·고사양·LTE’ 일색인 국내 휴대전화 시장이다.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내놓은 휴대전화 21종의 평균 출고가는 85만6157원. 이 중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폰(피처폰)은 단 두 종뿐인데 취급하는 매장을 찾기 어려웠다. 나머지 스마트폰 가격 평균은 90만원이 넘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만~30만원대 중저가 스마트폰도 생산한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에게는 팔지 않는다. 구글이 지난달 내놓은 레퍼런스(표준) 스마트폰 ‘넥서스4’의 가격은 299달러(약 33만원)다. LG전자가 국내 출고가 99만원인 옵티머스G와 거의 비슷한 부품으로 만들었지만 국내 출시 계획은 없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2를 해외에서는 통신망에 따라 3G/LTE용으로, 메모리 용량도 16·32·64GB로 가격과 조건을 다양하게 내놓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LTE용으로 메모리 64GB(115만원), 32GB(109만원)의 고용량 모델 두 종만 출시했다. 이에 제조업체 관계자는 “통신사가 국내에서 3G 모델 출시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DMB를 비롯해 국내 모델에만 들어가는 기능과 서비스 가격을 감안하면 단말기 가격이 해외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통사 보조금도 LTE에 집중되다 보니 고가 모델만 내놓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말기 과소비에는 통신사들의 책임도 있다. 보조금 정책 역시 비싼 단말기를 파는 데 맞춰져 있다. 서울 강남의 한 휴대전화 영업점이 판매원들에게 배포하는 ‘통신사별 리베이트 단가표’를 입수해 판매 보조금 실태를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한 통신사는 옵티머스뷰에 60만원을 지급한다. 갤럭시R이나 베가R3는 보조금이 40만원 선이다. 단말기나 통신비 가격 정보에 어두운 고객에게 출고가를 다 받고 팔면 한 대만 팔아도 50만~60만원을 챙길 수 있고 20만~30만원 깎아줘도 여전히 적지 않은 수당을 남길 수 있다. 반면 일반폰은 리베이트가 적다. 폴더형 일반폰 모델인 노리폰과 코비폰은 각각 한 대에 5000원과 2만원이 판매원에게 돌아간다. 판매원들이 스마트폰이 필요 없는 소비자에게까지 “요즘 누가 피처폰을 쓰느냐”며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배경이다.

 이렇다 보니 비싼 스마트폰이 필요 없는 이들도 과소비를 하게 된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스마트폰 구입 목적 중 ‘고성능 단말기를 사용하고 싶어서’(복수응답)는 34%에 그쳤다. 카카오톡이나 애니팡 정도의 서비스만 가볍게 즐기려는 고객도 마땅한 중저가 단말기가 없어 필요도 없는 고사양 단말기를 비싼 값에 사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대 서효중(컴퓨터정보공학부) 교수는 “이통사들이 국내에 그랜저와 에쿠스급 차량만 공급해 엑센트나 아반떼면 충분한 고객들까지도 비싼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단말기 과소비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유통 거품을 빼겠다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5월 도입한 것이 ‘단말기 자급제’다. 현재 제조사가 자급제로 내놓은 단말기는 갤럭시M(49만8000원)과 옵티머스L7(39만원)뿐이다. 그나마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특별취재팀=김창우·정선언·심서현 기자

◆알뜰폰= 이동통신 3사가 아니라 이동통신재판매사업자(MVNO)에 가입해 사용하는 휴대전화. MVNO는 이동통신망을 보유한 통신사업자로부터 망을 빌려 서비스하는 사업자다. 망 구축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이통사로부터 망을 도매가로 빌리기 때문에 통신요금이 20%가량 싸다. 현재 국내에는 에넥스텔레콤·KCT 등 20여 개 MVNO 사업자가 있다.

◆자급폰= 이통사를 통하지 않고 유통되는 단말기. 제조사·대형마트·온라인쇼핑몰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기기 상태로 구입한 뒤 자유롭게 이통사나 MVNO 등에 가입해 사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올해 5월부터 단말기 자급제가 시행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