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울면서 태어나는 우리, 고통과 희망은 동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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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1월의 주제 행복, 나의 선택 행복, 누구나 소망하지만 실제로 이를 느끼고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 달의 책’ 11월 주제는 ‘행복, 나의 선택’입니다. 나이도, 국적도 다른 세 저자가 자신의 체험을 들려주며 행복은 결단이요,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2012년도 벌써 11월, 한 해를 돌아보기에 길라잡이가 되는 책입니다.

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지식여행
264쪽, 1만3900원

일본에서 총 2200만 부가 팔렸다는 장편소설 『청춘의 문』으로 유명한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80). 그의 에세이집 『타력』(他力)이 올 7월 나오며 우리와 친숙해졌다. 『대하의 한 방울』은 그 책의 자매편이다. 삶에 대한 잔잔한 통찰을 보여주는 분위기가 닮은꼴이다.

 메시지도 그러하다. 세상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천국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삶의 고통을 먼저 인정할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역설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래야만 뜻밖의 작은 기쁨이나, 우정, 타인의 선의, 그리고 사랑이 갖는 의미와 제대로 접속할 수 있다. 저자는 그걸 논리나 원론이 아닌 자기 체험에서 들려준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첫째는 중학교 2학년 때이고, 두 번째는 작가로 일하기 시작한 뒤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원래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삶은 거대한 대하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니 겸손하라는 메시지도 된다.

 강력한 자기 긍정의 마인드로 똘똘 무장해도 쉽지 않은 세상에 이렇게 한걸음 물러서거나, 템포를 늦춰 잡아도 될까 싶다. 실은 그게 현대인의 삶을 어루만져주는 『대하의 한 방울』의 힐링 메시지이다. 그에 따르면 자신감을 내세우고, 긍정의 힘을 과신하는 것은 현대인의 얕은 생각이거나, 지적(知的) 오만이다.

 그래서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를 반복해 들려준다. “사람은 모두 울면서 태어난다.” 거대한 역설이다. “크게 기뻐하기 위해서는 크게 슬퍼해야 합니다. 깊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진정으로 웃을 수 없습니다. 희망은 절망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어, 깊이 절망하는 자만이 진정한 희망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21쪽)

 물론 비관이나 운명론과는 번지수가 다르다. 우리 한국문화 정서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인 공감의 코드도 없지 않다.

 『대하의 한 방울』은 에세이집으로는 정보량이 많고, 울림도 묵직하다. 읽고 난 뒤 이 풍진 세상을 버티고 견뎌내는 힘이 한 뼘 더 자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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