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길라잡이] 소년 소설 '얄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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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기공룡 '둘리' 를 모르는 아이들이 없는 것처럼, 한때는 '얄개' 를 모르는 아이들이 없었다.

'얄개' 는 소년 소설의 주인공으로, 청소년 독자까지 폭넓게 아우르던 지난 날 우리 아동문학이 거둔 몇 안 되는 주요 캐릭터 가운데 하나다.

1953년 청소년 잡지 '학원' 에 조흔파의 『얄개전』이 연재된 이래 보통명사 얄개는 일약 고유명사 '얄개' 로 떠오르게 된다.

'얄개' 는 이른바 명랑 동화의 붐을 타고 하이틴 영화로까지 진출하여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식민지와 분단의 질곡을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우리 동화 작가들은 너무 진지한 표정을 지어온 것이 사실이다.

작품의 주인공도 일탈의 해방감을 만끽하는 자유분방함보다는 힘겨운 상황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영웅적이고 헌신적인 성격이 압도적이다.

이 땅의 아이들에겐 이런 고난 극복의 주인공들이 정직한 자기동일시의 대상이었고 감동의 원천이었다. 이 때문에 그와 맞은편에 존재하는 명랑 동화는 대개 문제의식과 진정성이 결여된 통속 오락물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명랑' 딱지가 붙었다 해서 통째로 매도할 수는 없다. 어린이 책은 즐거움의 요소를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즐거움이 아니라면 해방도 없고 해방이 아니라면 즐거움도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얄개전』』의 진가는 바로 이 해방의 즐거움에 있다. 얄개의 본명은 나두수. 두 번이나 낙제한 천하제일의 말썽꾼 나두수를 모른다면 K중학교 학생이 아니다.

그런데 얄개의 짓궂은 장난에 번번이 골탕먹는 이들은 동료 학생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얄개는 학교 선생님이라든지 아버지 같은 가부장적 권위를 자기 별명이 말해주듯 발칙할 정도로 흔들어댄다.

얄개의 도발을 가능케 한 것은 해방 후 흘러들어온 미국식 자유주의 사상이다. K중학교는 미국인 선교회에서 설립한 학교이고 체벌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대학교수이자 우스꽝스러운 발명가로 나오는 얄개의 아버지도 실은 미국식 교육의 수혜자일테다.

『얄개전』은 새로 수입되기 시작한 미국식 가치체계를 상한선으로 하고, 이 땅에 완강하게 뿌리내린 봉건적 가치체계를 하한선으로 해서, 천방지축 주인을 내세워 이 두 가치체계의 충돌과 불협화음을 매우 경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통속성의 한계로 끝에서 주인공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작가는 벌써 미국식 자유주의의 승리를 일관되게 암시하는 듯하다. 물론 미국인 교장 허드슨조차 희화화하고 있어 이 작품의 층위를 그리 단순하게 여길 수만은 없다.

얄개는 아무리 가두려 해도 가둘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대표한다.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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