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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무시하는 배당,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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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수연
경제부문 기자

바람이 차다. 어김없이 결실의 계절이 왔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의 ‘가을걷이’는 배당이다. 요즘엔 배당이 더 중요해졌다. 한국 경제가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저성장’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기업이 쑥쑥 클 때 주주는 주가 상승으로 투자의 과실을 따면 된다. 하지만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 달라진다. 배당 수익이 더 주목받게 된다.

 배당은 양면성이 있다. 배당이 너무 많으면 기업의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현금을 깔고 앉아 투자도 배당도 하지 않으면 경제 전체로 보나 주주에게나 바람직하지 않다. 제일 좋은 건 ‘적정 수준’의 배당이다. 앞날을 위해 투자도 하고 주주에게도 돌려주고 종업원의 임금도 올려줄 수 있다면 기업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배당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무리한 배당으로 기업의 단물을 빼먹는 일부 ‘먹튀형’ 외국인 투자자의 행태도 한몫했다. 최근 웅진그룹 전체를 휘청이게 한 극동건설이 좋은 예다. 2003년 극동건설을 사들인 론스타는 당기순익의 최대 95%까지 배당으로 챙기고 사옥까지 내다 팔았다.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해마다 고배당을 요구해 금융감독 당국과 마찰을 빚는 일이 되풀이되기도 했다.

 배당에 인색한 대기업 계열 상장사도 배당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하는 데 한몫했다. 올해 코스피 상장기업의 평균 배당률(주가 대비 배당액)은 1.3% 안팎이다. 대기업 핵심 계열사의 배당률은 1%도 안 될 전망이다.

 저성장·저금리로 투자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 요즘, 주식 투자자의 고배당 선호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투자자 요구를 무시하는 기업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내로라하는 한국 대표기업들, 지금 같은 배당정책으로는 투자자에게 외면받기 십상이다. 오래 계속되면 ‘헐값, 싸구려 주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투자자·기업 모두에게 최고의 ‘가을걷이’가 되는 배당정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