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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올림픽대표 '폭설 담금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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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도에도 눈발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20년 만에 이런 눈은 처음 봄수다"라는 어느 주민의 말처럼 4일부터 이틀 내내 내린 눈은 제주 전체를 설국(雪國)으로 만들었다. 섬 곳곳의 도로는 끊겼고 인적은 드물었다.

지난 3일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올림픽대표팀에도 눈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새해의 힘찬 시작을 4일 한라산 정상에서 맞으려 했으나 등반로가 폐쇄되는 바람에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것으로 대체해야 했다.

5일에도 실외 훈련은 어려웠다. 대신 오전엔 숙소인 서귀포 KAL호텔에서 웨이트 트레이닝과 체력훈련을 했고, 오후엔 서귀포고 동흥체육관에서 개인 전술훈련을 했다.

김호곤 감독의 담금질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강도높게 진행됐다.

"오전 10시까지 숙소 앞 공터에 20명 전원 집합!"

폭설 '덕분'에 내심 따뜻한 아랫목을 기대했던 선수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지시였다.

주장 조병국(수원 삼성)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선배들에게 뒤질 순 없다"며 분위기를 다잡고 나섰다. 선수들은 곧바로 눈발을 맞으며 뛰쳐나갔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며 몸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목말을 태우며 몸뚱이들을 맞부딪쳤다. 원초적인 체력훈련이었다.

김감독은 "요령을 피우는 선수는 필요없다. 이번 (제주)훈련은 체력훈련이 아니라 정신력 훈련이다. 태극 마크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하고만 끝까지 갈 것"이라며 선수들을 채찍질했다.

오후엔 훈련 장소를 실내로 옮겨 개인 전술훈련을 했다. 이상철 수석코치는 몸소 시범을 보이며 기본동작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점검했다.

선수들의 각오도 남달랐다. 전재운(울산 현대)은 "최종 엔트리에 들기 위해선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선수 모두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의 앞날에는 그러나 의외의 암초가 있다. 선수 차출을 둘러싼 프로 구단들의 반발이다. 안양 LG가 총대를 멨다.

안양의 이재하 사무국장은 "올림픽 예선전을 4,5개월 앞두고 우리 팀에서 7명이나 데려가는 것은 프로 구단에는 동계훈련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안양은 지난 2일 소속팀 선수들의 대표팀 합류를 거부하는 공문을 축구협회에 발송한 뒤 대표팀의 제주 훈련에 선수들을 보내지 않았다.

김호곤 감독은 "나도 프로팀 감독을 해본 사람이다. 선수를 줄여달라면 그럴 수도 있고, (차출)기간을 줄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안양은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몰고 간다. 그렇다면 나도 안양 선수들을 제외한 채 20명 만으로 훈련을 하겠다"며 맞섰다.

양측의 팽팽한 대립으로 대표팀의 전력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림픽대표팀은 6일부터는 서귀포 동부구장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정신력과 체력에 초점을 맞춘 제주도 전지훈련에 이어 9일부턴 장소를 울산으로 옮겨 팀 전술을 가다듬을 예정이다.

서귀포=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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