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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WBC는 신이 내 야구 인생 시험하는 무대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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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종범이 2006년 제1회 WBC 2라운드 일본과의 경기가 끝난 뒤 대형 태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며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올 시즌 프로야구는 700만 관중을 돌파하며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프로야구의 흥행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팬들의 관심을 끌어낸 건 ‘4강 신화’를 달성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부터였다.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위상을 떨치면서 프로야구사(史)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야구는 2009년 열린 2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선수들도 WBC를 통해 야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WBC에서의 활약으로 선수 생활을 연장하는가 하면 ‘국민 영웅’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또한 신예 시절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지금 한국 야구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WBC 1회 대회는 시작 전부터 경기력과 흥행 모두 의심을 받았다. 시즌을 앞두고 열린 대회라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들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이상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42·한화 코치)의 각오도 남달랐다. 그는 대표팀 주장을 맡아 ‘군기반장’을 자처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다. 그는 “당시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국가를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이종범은 단연 빛났다. 그는 1라운드 한·일전에서 가볍게 안타를 치고 나가 이승엽의 홈런 때 홈을 밟으면서 일본의 콧대를 꺾었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미국전에서는 감기로 인한 목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4타수 2안타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이종범은 4강 진출의 마지막 관문에서 다시 만난 일본을 상대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그는 0-0으로 맞선 8회 1사 2, 3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2루타를 뿜어내 승리를 이끌었다. 이종범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신께서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종범은 WBC 이후 부진에 빠졌다. 2007 시즌 뒤에는 소속팀 KIA로부터 은퇴 압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WBC에서의 활약을 기억하는 팬들은 그의 은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행히 이종범은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2009년 부활해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는 “2006년 WBC를 계기로 야구의 인기가 올라가고 인프라가 향상됐다”며 “2006년 WBC는 나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고 2009년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강타선 꽁꽁 묶은 ‘돌부처’ 오승환

WBC에 연달아 출전한 봉중근(오른쪽 위)과 김태균(오른쪽 아래)은 2009년 대회에서 맹활약했다. [중앙포토]

WBC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두 번의 WBC에 모두 나선 투수 봉중근(32·LG)이 대표적이다. 봉중근은 미국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 소속이던 2006년 처음 WBC 무대를 밟았다. 당시에는 주연보다 조연에 가까웠다. 세 차례 마운드에 올라 2와3분의2 이닝을 던져 2볼넷·1탈삼진·무실점을 기록했다.

 봉중근은 2009년 두 번째 WBC에서 ‘일본 킬러’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일본과의 1라운드 1, 2위 결정전에 선발로 자원 등판해 5와3분의1 이닝 동안 3피안타·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봉중근이 자원 등판한 이유는 후배 김광현 때문이었다. 김광현은 일본과의 1라운드 2차전 경기에서 5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봉중근은 “후배 광현이가 일본에 당한 것을 복수하고 싶었다. 자원 등판으로 나섰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봉중근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2라운드에서 또다시 만난 일본을 상대로 5와 3분의1 이닝 3피안타·1실점으로 호투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이치로 굴욕 사건’이 화제가 됐다. 봉중근이 견제구를 던지는 동작만 취해도 이치로가 곧바로 1루로 엎어져버렸기 때문이다. 팬들은 일본을 상대로 눈부신 호투를 펼치고, 간판타자 이치로를 농락하는 봉중근에게 안중근 의사를 빗대 ‘봉 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별명을 꼽으라면 ‘봉 의사’다”라고 했다.

 봉중근에게 WBC는 좋은 기억만 가득했다. 그는 “운동선수라면 국가대표는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라며 “두 번이나 WBC에 뽑힌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위기 대처 능력과 대범함, 평정심 유지 등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고 했다. 이어 “이제 나는 고참이 됐다. 경기에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희생해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3회 대회에 뽑아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외야수 이진영(32·LG)은 WBC에서 놀라운 수비를 선보이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회 WBC 대회 일본과의 아시아라운드 3차전 0-2로 뒤진 4회 말 2사 만루 위기에서 일본 니시오카 쓰요시의 빨랫줄 같은 타구를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이진영의 호수비를 발판 삼아 한국은 3-2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진영은 일본과의 8강전에서는 0-0으로 맞선 2회 말 2사 2루에서 일본의 우전안타 때 정확한 송구로 2루 주자를 홈에서 잡아 승리의 숨은 공신이 됐다.

 이 밖에 투수 서재응(35·KIA)은 4강 진출이 확정된 뒤 에인절스 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아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물론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가 문제 되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위험한 행동이기도 했다. 투수 오승환(30·삼성)은 일본의 강타자를 꽁꽁 묶으며 ‘돌부처’의 탄생을 알렸다.

WBC, 해외 진출의 교두보

한국 야구가 두 번의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 선수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태균(30·한화)과 이범호(31·KIA)는 WBC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일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06년 WBC에서 벤치 멤버였던 김태균은 2009년 대회에선 이승엽이 빠진 대표팀의 4번 타자로 나섰다. 그는 홈런(3개)·타점(11개) 1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 김태균은 그해 시즌을 마치고 FA(프리에이전트) 자격으로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김태균은 “WBC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국가를 대표해 뛰는 건 언제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3회 대회에 나간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범호도 김태균과 마찬가지로 두 번의 WBC에 개근했다. 1회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범호는 2회 대회에서 대표팀의 중심 타선을 이끌었다. 그는 2회 대회에서 타율 4할(20타수 8안타)에 3홈런·7타점·5득점으로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했다. 특히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2-3으로 뒤진 9회 말 2사 1, 2루에서 다루빗슈를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범호의 활약은 일본 프로야구 관계자의 눈을 매료시켰다. 결국 그는 2009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으로 소프트뱅크에 진출했다.

1회 대회가 해외파와 베테랑 중심이었다면 2회 대회는 신구 조화를 앞세운 ‘21세기 드림팀’이 구성됐다. 류현진과 윤석민·김광현(이상 투수)을 비롯해 김현수·최정·강민호(이상 야수) 등 젊은 선수들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젊은 선수들은 WBC 대회를 통해 큰 경기 경험을 쌓았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부닥치며 성장했고, 그 경험은 국내 무대에서의 활약으로 이어졌다. 류현진과 윤석민·김광현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매김했고, 김현수·최정·강민호 등은 소속 팀의 중심 타자가 됐다.

유병민 기자

◆WBC, JTBC가 독점 중계=제3회 WBC는 종합편성채널 JTBC가 독점 중계한다. JTBC는 최근 WBC 중계권 판매사인 MP&SILVA와 WBC 총 39경기에 대한 한국 내 단독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JTBC는 다음 달 15일 예선 라운드 경기를 시작으로 한국 야구대표팀이 참가하는 내년 3월 본선 라운드의 전 경기를 중계한다. 야구팬들이 JTBC를 통해 또 다른 명승부와 명장면을 만나게 되는 셈이다. 3회 대회는 참가국을 기존 16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렸다.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WBC는 JTBC와 파트너십을 맺고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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