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원FC가 대구 잡던 날 대구 대파 흔든 아저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한 축구팬의 이색 응원이 화제다. 다소 쌀쌀한 바람이 불던 지난 21일 강원 강릉종합운동장 관중석. 그 한쪽에 상의를 벗은 채 오른손에는 ‘대구 두 마리’, 왼손에는 ‘대파 한 단’을 든 남성이 나타났다. 프로축구 강원 FC 서포터스 나르샤 소속인 최웅근(41·사진)씨였다. 최씨는 강등 위기인 강원이 대구 FC에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생물 대구와 대파를 들고 “대구 대파!”를 외쳤다. 최씨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강원은 3-0으로 완승했다.

 최하위 강원이 3골을 넣고 이긴 것보다도 최씨의 이색적인 응원이 더 주목 받았다. 강릉 토박이 최씨는 강원이 2009년 창단했을 때부터 열혈 팬이었다. 하지만 강원은 항상 하위권에서 맴돌았고, 급기야 올해는 꼴찌로 처졌다. 최씨는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진 게 너무 안타까워 재미있는 응원으로 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의 대구 대파 응원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3월 10일 강원의 올 시즌 첫 홈경기였던 대구전에서도 똑같은 응원을 펼쳤다. 그는 “그때는 시장에 생물 대구가 없어서 대구와 비슷한 말린 명태(코다리)를 들고 응원했는데 2-0으로 이겼다”면서 “진짜 대구를 들고 응원하니 더 큰 점수 차로 이겼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최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강원 FC와 관련된 일이면 열정적으로 변한다. 올 시즌 홈경기는 전부 직접 관람했고, 부산·울산·광양 등지로 원정 응원도 다녔다. 가족들도 덩달아 강원 팬이 됐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도 열심히 최씨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대구 대파 응원으로 화제의 인물이 되면서 식구들이 변했다. 최씨는 “아이들이 부끄럽다며 경기장에 안 온다. 아내도 대구 대파 응원은 하지 말라고 해서 다퉜다”며 웃었다.

 이렇게 열정적인 그도 선수들 앞에서는 수줍은 팬이 된다. 2002 월드컵 4강 주역인 이을용 강원 코치를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다. 강원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사인 한 장도 없다. 그가 바라는 건 딱 하나. 강원이 강등 위기를 넘어 강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최씨는 “강원을 위해 대구 대파 응원에 버금가는 새로운 응원을 연구 중”이라고 귀띔했다.

박소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