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한국 수영의 예고된 침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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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영이 이웃 일본으로부터 연일 `비보(悲報)'를 접하고 있다. 25일로 세계선수권 경영이 메달 레이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됐지만16강 준결승은 커녕 한국신기록 조차 깜깜 무소식이다.

3년전 호주 퍼스에서 한규철(삼진기업)이 세계 7위의 신화를 창조하며 가능성을 활짝 열었던 한국은 24일 구효진(인화여고)이 평영 200m에서 예선 탈락하면서 8강목표를 일찌감치 접었다.

선수단 책임자인 정부광 대한수영연맹 전무는 출국전 "적어도 한두명은 8강에 근접하지 않겠느냐"고 했다가 이제와선 "사실 8월 베이징 유니버시아드를 목표로 훈련을 해왔다"고 꼬리를 내렸다.

세계선수권 대신에 대학생 축제에 정력을 쏟았다니 한국수영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을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일본의 성장과 중국의 재도약이다. 일본은 거의 모든 종목에서 미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중국은 약물파동의 시련을 딛고 90년대 신화 재현에 나섰다.

제자리 걸음 끝에 맞은 한국수영의 추락은 사실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연간 10억 가까이 연맹에 투자하던 현대그룹이 98년초 `철수'하면서 돈줄이 끊겼고, 이 와중에 수영인들간의 추악한 자리 다툼으로 조오련-최윤희-지상준-한규철로 이어져 내려오던 수영계의 맥마저 끊어졌다.

수영계가 서로를 헐뜯는 송사가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변하면서 문화관광부는 연맹 지원을 끊어 결과적으로 수영을 국내 아마스포츠의 변방으로 내몰았다.

연맹은 지난해 지방건설업체 사장을 새 회장으로 세워 새 출발했지만 아직 회장 승인조차 받지 못할 만큼 당국의 냉대는 여전하다.

한국수영의 찬밥신세는 이번 세계선수권에 고작 8명의 선수가, 그것도 회장 이사재를 털어 출전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이같은 투자 부족은 저변 약화를 불러, 현대그룹의 철수전까지 4천-5천명 수준이던 선수층이 어느새 1천800명으로 얇아져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수영연맹 관계자는 "회장 출연금(연간 3억원)으로는 연맹 살림조차 빠듯한 상황"이라며 "선진영법 등 기술 부문에서 일본, 중국 못지 않게 노하우가 쌓여 있지만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제자리 걸음에도 만족해야할 처지"라고 털어놓았다.

올림픽이 끝나면 입버릇처럼 "기초종목을 키우겠다"는 대한체육회장 등 당국자들의 공약이 이제 실천으로 옮겨질 때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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