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 “56조 재원 부담” “모두가 받게” “입원은 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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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엔 주요 후보들의 정책·공약이 좌우로 튀기보다 대개 중도로 수렴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는 게 지지층을 넓히는 데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이슈에선 후보들이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핵심 지지층에 따른 정체성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중앙선관위가 한국정당학회에 의뢰해 10대 정책의제를 선정해 후보들의 입장을 물은 뒤 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개 이슈에서 후보 간의 확실한 견해차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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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각이 뚜렷한 사안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폐지 여부였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폐지에 반대했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찬성했다. 박 후보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학생들의 학력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력 향상을 위한 정부의 맞춤형 지원은 불가능하다”며 다른 선진국에서도 다 한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는 다만 “평가 결과 공개로 학교 간 서열을 조장하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문 후보는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강화해 창의력 교육을 저해하고, 학교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므로 표집조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도 “문제풀이식 교육을 더욱 심화시키고 교육주체들의 소모적인 무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며 “교과별 학습 요소와 그 최소 수준 도달 여부만 확인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무상의료에 대해서도 후보들의 스펙트럼이 확실히 달랐다. 박 후보는 “무상의료에 필요한 재원은 최대 56조원으로 추정되며, 국민 세금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반대를 분명히 했다. 박 후보는 “의료쇼핑 같은 도덕적 해이가 심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저소득층 보호를 강화하고 필수의료 중심의 보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국민 모두가 질병 치료에 대한 걱정 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최소한의 자기 부담만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사실상의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고 지지입장을 내놓았다. 입장을 ‘기타’로 분류한 안 후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며 “본인부담 의료비를 최소화함으로써 OECD 평균 수준의 ‘입원 의료에 대한 실질적인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분적 찬성인 셈이다.

 공기업 민영화 확대도 3인3색이었다. 박 후보는 ‘조건부 찬성’이다. 그는 “공익성의 훼손 없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민영화에 긍정적이면서도 “철도·가스·공항·방송 등 국가기간망이나 국민 생활, 산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국민적 합의 없이 민영화를 추진해선 안 된다”고 단서를 달았다. 문 후보는 “공기업이 민영화되면 단기수익 극대화만을 노려 사회적으로 필요한 장기투자가 감소하고 민영화 과정에서 고용감축이나 대규모 국부유출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안 후보는 ‘사안별 접근’을 제시하며 “공기업의 성격에 따라 판단해야 할 이슈로 일괄해서 입장을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설명을 붙였다. 다만 그는 “인천공항과 KTX는 공기업이면서도 우수한 경영성과를 내고 있어 민영화는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누진 직접세 방식의 부유세 도입’과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서도 후보들의 입장이 미묘하게 달랐다. 이번 설문에서 안 후보는 총 10개 질문 가운데 5개 항목에서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기타’라고 답했다. 박 후보는 ‘기타’ 답변이 한 개밖에 없었고, 문 후보는 전 항목에 걸쳐 찬반을 명시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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