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넌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강갑생
사회부문 차장

빅터란 소년이 있었다. 어눌한 말투와 굼뜬 행동 탓에 학교에서 늘 놀림감이었다. 담임 교사도 그를 멍청이 취급했다. 수시로 그에게 “멍청한 놈. 바보에게 공부는 필요 없어”라고 소리질렀다. 열다섯 살 때 빅터는 IQ 테스트를 받는다. ‘173’이란 경이적인 수치가 나왔지만 교사는 학생부에 ‘73’을 적었다. 빅터를 바보라고 생각한 교사에게 앞의 ‘1’이란 숫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빅터의 IQ가 73이란 소문이 학교 안에 퍼져 더 큰 놀림감이 됐다. 급기야 학교를 그만뒀다. 아버지를 따라 자동차 정비를 배웠다. 자신은 늘 패배자이자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가 우연히 진실을 알게 된 것은 17년이나 흐른 뒤였다. 빅터는 옛 담임교사에게 “도대체 왜?”라고 따진다. 하지만 허송한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후 빅터는 천재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에까지 오른다. 지난해 읽은 『바보 빅터』란 책 얘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존 거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보면서 불현듯 바보 빅터를 떠올렸다. 그 역시 일반인 시각에선 비정상적인 아이였다. 16세 때 생물과목 성적은 250명 중 꼴찌였다. 생물교사는 성적표에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적었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 모두에게 시간낭비’라고까지 썼다. 하지만 그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됐다. 거던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실험이 잘 풀리지 않으면 63년 전 성적표를 들여다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에 재능이 없다던 선생님의 말이 옳았음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성적표가 그에겐 자극제란 의미일 게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그에겐 충격과 실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만약이지만 빅터의 담임교사가, 거던 교수의 생물교사가 이들에게 “넌 안 돼” 대신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좌절과 방황은 꽤나 줄었을 듯싶다.

 우리네 학교 사정도 사실 별반 다르진 않다. 얼마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초·중·고생 1941명에게 물었더니 교사로부터 학업성적에 대해 상처받는 말을 들었다는 답이 많았다. 아이의 숨은 재능을, 소중한 가능성을 보는 대신 겉으로 드러난 성적으로만 재단하다 보니 빚어지는 일이다. 물론 많은 아이들을 상대로 숨은 재능을 찾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적지 않은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형제·자매·남매도 모자라서 친구 딸과 아들까지 비교하며 자녀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설문 결과 아이들이 가장 기분 좋아하는 말은 “기운 내. 넌 할 수 있어”였다. “넌 소중한 사람이야”란 응답도 많았다. 교사가, 부모가, 친구가 자신을 믿고 인정해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격려가 “넌 안 돼”보다 어떤 위력을 지닐지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새삼 되뇌어 본다. “넌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