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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전야, 일본의 풍경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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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노벨상 주간이 지나갔다. 8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15일 경제학상까지 6개 분야 시상자가 발표됐다.

 도쿄 특파원으로 바라보는 노벨상 주간은 한국에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한국에선 그저 딴 세상 얘기처럼 지나쳐 버렸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오늘은 후보가 누구야” “오늘도 탈 수 있을까”라며 매일매일 기대감에 부푼다.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드라마이자 올림픽 결승전이다.

 노벨상 주간 일본 한 민영 방송사의 취재 계획서를 우연히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오후 6시30분 생리의학상 발표가 예정됐던 8일, 이 방송사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뇌연구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화학연구소의 이토 마사오 교수가 수상할 경우에는 연구실에서 회견이 예정돼 있고, fMRI(기능성 자기공명장치)를 개발한 오가와 세이지 박사가 수상하면 가마쿠라시 자택의 현관 앞에서 취재가 가능하니 집 부근에서 대기해야 한다. 콜레스테롤 억제제를 개발한 엔도 아키라 교수가 수상하면 도쿄 농공대 본부 건물에서 오후 7시15분부터 기자회견이 있고,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수상 가능성도 있으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리의학상에만 네 명에 달하는 후보자들에게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가 모두 따라붙었다. 결국 축포는 교토에서 터졌고, iPS(유도만능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업적으로 야마나카 교수가 영예의 주인공이 됐다. 일본엔 19번째 노벨상 수상이자 과학상에서만 16번째였다. 일본 전체가 떠나갈 듯 환호했다.

 물리학상이 발표된 9일도, 화학상이 발표된 10일도 마찬가지였다. 물리학상엔 중성미자 관측에 성공한 스즈키 아쓰토 교수 등 세 명의 일본인이 유력 후보에 포함됐다. 10일엔 산화 티타늄의 광촉매 반응을 연구한 후지시마 아키라 교수의 수상 가능성에 일본 열도가 숨을 죽였다.

 11일 문학상이 기대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이 무산되면서 올해 일본인 수상자는 야마나카 교수 한 명으로 마무리됐다.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일본의 노벨상 축제도 그렇게 끝났다. “오늘은 일본인 수상자가 없었다”며 아쉬움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 “오늘은 아쉽게 금메달이 나오지 않았다”는 한국의 올림픽 보도가 떠올랐다.

 도쿄 특파원에게 “일본의 노벨상 비결을 취재하라”는 지시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별로 없다. 과거 수상자나 문부과학성 관료들을 취재해도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중요하다” “선배 수상자가 자극하고 후배들이 정진하는 연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과학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범답안들만 돌아온다. 하긴 기본에 충실한 것 외에 노벨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따로 있겠는가.

 축구 한·일전 패배보다 더 배가 아파야 하는데 요즘엔 그런 분함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줄어드는 것 같아 더욱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