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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청소년 게임 평가 기준,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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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게임 이용 평가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모바일 등으로 확대하기에 앞서 평가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 등에서는 “게임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평가 기준을 풍자하는 게임 대회를 열기도 했다. 평가제 도입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들어봤다.


게임 중독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인터넷게임 셧다운제를 둘러싼 대립은 2005년부터 지속돼 왔다. 학부모, 시민단체, 청소년 보호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는 도입을 주장해 왔다. 도입 주장은 청소년의 과도한 인터넷게임 이용에 따른 폐해 사례의 급증, 청소년 10명 중 한 명이 게임중독이라는 국가기관의 공식 조사 결과에 기반하고 있다. 이에 게임업계와 게임산업 진흥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산업 위축을 우려하며 반대해 왔다.

 이러한 대립은 6년여 동안 지속됐고, 2011년 셧다운제 도입의 법제화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아쉬운 점은 반대 진영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보니 무늬만 셧다운제인 형태로 도입됐다는 것이다. 만 16세 미만의 초등학생·중학생들에게만 심야시간 인터넷게임 제공을 제한하도록 규정했고, 정작 가장 많은 이용량을 보이면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고등학생은 제외됐다.

 최근 찬반 진영이 셧다운제 적용 대상 인터넷게임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평가계획안을 둘러싸고 다시 대립하고 있다. 셧다운제 반대 진영은 평가계획안에 포함돼 있는 평가문항들이 인터넷게임을 해로운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스마트폰·태블릿PC에서 제공되는 게임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평가안에 대한 이해 부족 또는 의도적인 논란 유발을 통해 궁극적으로 셧다운제의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평가안은 청소년보호법(26조 제2항)과 게임산업진흥법(12조 3 제2항)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이들 법률은 여성가족부가 문화부와 협의해 셧다운제 적용을 받고 있는 게임을 2년마다 평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평가에는 반드시 인터넷게임의 유형·내용·사용기기와 게임물의 과도한 이용을 유발하는 요인 등을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평가안은 이러한 법규정을 충실히 반영해 만들어졌다. 포함된 평가문항들은 과도한 이용을 유발할 수 있는 게임의 기술적 특성·구조를 평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반대 진영이 주장하는 게임의 유해성과는 무관하다. 게임의 유해성은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평가하고 있는 사안에 해당된다. 또한 평가안은 확정되지 않은 계획안으로 법규정에 따라 문화부와의 협의 및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확정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스마트폰·태블릿PC에서 제공하는 게임도 셧다운제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려고 의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평가안 어디에서도 이와 관련된 평가문항이나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청소년보호법은 이들 기기에서 제공하는 게임도 셧다운제 적용 대상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스마트폰·태블릿PC의 게임은 법조항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여성가족부와 문화부의 합의에 따라 2년간 적용 유예된 것뿐이다. 따라서 적용 유예의 연장 또는 적용 제외는 향후 평가에 따라 결정되거나 협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사안이다.

 앞으로 건전한 게임문화가 형성되면 현재와 같은 논란과 셧다운제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은 학원의 심야 교습 금지를 통해 청소년에게 적절한 수면시간을 보장해 주는 규제와 같이 인터넷게임에 대한 셧다운제를 필요로 하고 있다. 대립보다는 셧다운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의 신체·정신적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건전한 게임문화 형성에 서로의 지혜를 모을 때다.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게임은 안 할수록 좋다는 발상일 뿐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일주일 전 여성가족부는 대중가요 293곡에 대한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취소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싸이의 ‘라잇 나우’에 채워졌던 족쇄를 풀어주기 위한 작업이었다. 세계를 들썩이게 한 ‘강남스타일’ 열풍과 국위·국익을 내세운 여론이 압박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노래들은 유해하다”며 꿋꿋했던 여성부였다. ‘라잇 나우’가 족쇄를 벗은 바로 다음 날, 우리나라의 한 16세 프로게이머가 국제대회에서 게임을 중도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 맞다. 셧다운”이라는 멘트와 함께 오후 11시58분쯤 게임장을 퇴장했고 경기를 관전하던 각국의 팬 1만여 명은 경악했다. 여성부가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야심 차게 만든 셧다운제의 결과였다.

 셧다운제에 이어 그 적용 기준을 명시한 ‘청소년 인터넷 건전이용제도 대상 게임물 평가계획’이 공고됐다. 공청회 등을 통해 확인된 바로는 여성부는 “기준안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수정하거나 폐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부는 스스로를 또 한번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실효성도 없는(제도 시행 이후 청소년의 심야 게임량은 3%가량 줄었을 뿐이다) 셧다운제 자체부터 문제투성이다. 이미 두 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돼 위헌 여부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셧다운제의 문제점을 고민하기는커녕 그 추가 적용을 위한 평가지표를 만든 것이다.

 여성부가 제시한 기준인 상호작용, 보상, 경쟁심(성취감)은 모두 ‘즐거움’의 요소다. 게임을 포함한 여가(취미)활동의 본질인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게임의 긍정적 효과 중 하나로 사회성(상호작용) 제고를 꼽는 학자가 많은데 이것을 ‘나쁜 게임’의 기준으로 간주하는 것은 왜인가. 이 기준이 게임의 유해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셧다운제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일 뿐이라는 여성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게임을 오래 하도록 만드는 기제를 측정하겠다는 것이고, 오래 하는 게임은 유해한 게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부모가 자녀에게 성적이 오르면 선물을 약속하기도 하고 학생들은 성적 오르는 재미에 공부를 하기도 한다. 잠을 설치며 공부하느라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 여성부 기준대로라면 이 ‘보상구조’나 ‘경쟁심 유발구조’ 때문에 공부는 규제돼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각 항목의 측정 가능성 문제도 심각하고 게임에 대한 몰이해도 간과하기 어렵다. 미션에 성공하면 레벨업이 되는 것이 ‘나쁜 게임’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핵심은 정책의 논리적 근거가 “게임은 안 할수록 좋다”는 ‘꼰대식’ 인식이라는 점이다.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그나마 몇 안 되는 여가활동이라는 점은 무시된다. 게임을 하도록 만들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게임에 몰입하게 만드는 ‘환경’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여성부는 게임을 강제적으로 봉쇄하는 가시적이고 속 편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의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먼저여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평가계획’은 물론이거니와 시대착오적인 ‘셧다운제’ 자체가 폐기돼야 한다. 싸이의 ‘라잇 나우’ 사건이나 국제 게임대회의 해프닝 같은 코미디 때문에 여성부가 조롱당하는 일이 다시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