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언제까지 NLL 회담록 입씨름만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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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2007년 10월 평양에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의 기록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에 관해 ‘양보적’ 입장을 취했다는 주장이 새누리당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의 진위는커녕 회담록 존재 자체를 둘러싸고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사안은 매우 중대한데 회담록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있으며, 이를 공개해야 하는지 소모적 논란만 계속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미래를 향한 비전을 놓고 경쟁하고, 이를 보고 국민이 차기 리더를 선택하는 국가 최대의 정치행사다. 그런데 과거 일을 놓고 입씨름만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선거일이 두 달 앞인데 언제까지 이런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것인가.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회담록을 보고 확인하면 금방 끝날 일이다. 사실은 하나인데 서로 있다 없다 시비하는 것으로 국민의 판단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법적인 제약이 있지만 해결하려고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정당마다 서로 정략적으로만 이용하려고 하는 사이 논란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원본과 사본이 있었는데 사본에 대해선 노 대통령이 퇴임 전 폐기를 지시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김경수씨는 노 대통령이 폐기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현재의 이명박 청와대는 청와대에 회담록 문건이 없다고 확인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은 “회담록이 보관됐는지 여부를 기록원은 파악할 수 없으며, 이를 알아보려면 국회 의결(3분의 2)이나 법원 영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회담록 원본에 관해서는 정상회담을 수행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에 남겨놓았다고 확인한 상태다. 하지만 현재의 국정원은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처음 ‘노 대통령 NLL 포기 발언’ 주장을 내놓았던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떤 회담 기록 문건을 보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국회가 합의해 확인하면 끝날 일을 언제까지 허공에 대고 있다 없다 주장만 하고 있을 건가. 정상회담 회담록, 더군다나 남한 대통령이 북한 국가원수와 가진 회담의 기록은 매우 중요한 문서다. 그런 문서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조차 이런 혼미(昏迷)에 빠져있는 건 한국 사회의 무질서와 혼돈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정상회담 기록은 공개되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국가안보 등에 관한 중요 내용은 다음 정부에 인계되는 게 필요하다. 더군다나 대북 정책을 입법할 국회나 대북 정책을 내놓고 경쟁해야 하는 후보들이 영토 문제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면 알아야 한다. 정치적 합의만 하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국회는 의결 또는 협의를 통해 기록원 또는 국정원에 회담록이 있는지 여부를 빨리 확인하고, 그 내용도 검토하기 바란다. 그 기록에 문제가 있다면 그 내용으로 토론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문제가 없다면 다른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 차기 정부 지도자를 선택하려는 국민을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