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부인, 러시아 루블화에 꽂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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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와타나베 부인(일본 투자자)’의 입맛이 다양해지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에 이어 터키 리라화에 쏠렸던 눈이 최근엔 러시아 루블화로 향하고 있다.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3분기 ‘우리다시(賣り出し) 본드’ 판매액 중 루블화 표시 해외채권이 셋째로 많았다. 우리다시 본드는 소액 외화채권으로 주로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한 사무라이 본드와는 달리 와타나베 부인이 주 판매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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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블화 채권은 최근 브라질 채권, 터키 채권에 이어 셋째로 돈이 많이 몰리고 있다. 누적액으로 보면 2010년 이후 와타나베 부인이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아온 호주 달러나 미 달러 표시 채권에 비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FT는 바클레이스 도쿄의 수석 환율 전략투자가인 야마모토 마사후미를 인용해 “루블화가 새로운 인기 통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전 세계 각국의 금리와 통화가치 등이 급변하는 데 따른 현상”으로 분석한다. 글로벌 금리 수준과 통화가치를 비교해 봤을 때 러시아 채권이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와타나베 부인의 해외 투자는 2000년대 이후 본격화했다. 일본 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자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유력한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면서다. 일본투신협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와타나베 부인의 해외채권 수익률(호주·미국·스웨덴 등 국채 수익률 평균)은 일본 주식은 물론 일본국채권 투자보다 크게 높았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가 와타나베 부인이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루블화 채권에 쏠리는 인기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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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효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연구원(CFA)은 “와타나베 부인이 그간 많이 투자했던 스웨덴 해외 채권이나 브라질 채권이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매력을 잃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통화가 강세를 띠는 러시아나 터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현재 러시아 10년물 국채금리는 7.90%로 높은 편이다. 특히 최근 경기 둔화에도 당분간 고유가가 지속될 거란 전망에 산유국 러시아의 경제 회복세를 점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루블화 가치가 비교적 안정적 흐름을 보이는 것도 장점이다. 일본의 주요 운용사인 디암의 상품개발그룹 책임자 하마다 요시히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지난해 브라질 헤알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을 아직 잊지 않았다”며 해외 채권 투자엔 금리 못지않게 통화가치의 흐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 원화 강세 흐름 속에 한국의 ‘김 여사’는 어떤 투자전략을 취해야 하는 걸까.

 요즘 한국 경제는 와타나베 부인이 맹활약을 하기 시작했던 일본의 2000년대와 비슷한 흐름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본격 저금리·저성장 문턱에 들어섰다는 진단도 많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일본 가계의 순금융자산은 90년 240조 엔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며 “일본이 좀 더 일찍 해외에 눈을 돌렸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해외 채권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꿔 좋은 성과를 올렸던 와타나베 부인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2000년대 와타나베 부인에 비해 현재의 김 여사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한국의 금리 수준이 2000년대 일본에 비해 높은 데다 원화 가치도 엔화처럼 환차익을 누리기 쉽지 않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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