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시대,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 오른 쪽 클릭 이동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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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충돌이다. 중국 경제는 국가의 힘과 시장의 힘이 대치하는 양상을 보이며 발전해 왔다.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 또는 정치적 사건에 따라 좌(左)와 우(右)를 왔다 갔다 한다(편의상 국가의 계획이 강조되는 것을 좌, 시장의 자율이 중시되는 것을 편하게 우라고 보자). 물론 개핵개방 이후 큰 줄기는 우향우(右向右)였다. 국가가 완전 통제하던 계획경제 시스템에서, 민간의 자율을 인정해주는 (사회주의)시장경제 제도로 바뀌어 왔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좌와 우의 대립이 있었고, 지금도 그 힘의 충돌은 지속되고 있다.
가장 오른 쪽으로 달린 시기는 장쩌민 때다. 그는 3개대표를 내걸며 자본가들을 공산당 틀 안으로 끌어들였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경제학자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면서 경제는 자유주의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공산당과 금권(기업)이, 공산당과 지식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후진타오 시기에는 왼쪽으로 갔다. 과학발전관 자체가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한 것이었고, 2000년대 후반 추진된 국진민퇴(國進民退)로 좌성향은 더 뚜렷해졌다.
그렇다면 시진핑 시기는 어떨까?
저장(浙江)성은 중국에서 ‘민영기업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144개 업체가 저장성에 있다. 다음 달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저장성 당서기로 일했다. 당연히 민영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전문가들은 그의 ‘저장 경력’이 향후 경제정책에 크게 반영될 것으로 분석한다. ‘후진타오 시기에 비해 국가 계획보다는 민간 자율을, 국유기업보다는 민영기업을 더 중시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좌에서 우로 한 클릭 이동이다.
개혁·개방 34년, 중국 경제는 세계 2위에 오를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 성장에서 소외됐다. 통계가 보여준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노동자 급여 비율은 1997년 약 53.4%에 달했으나 지금은 40%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GDP 대비 정부 재정수입 비율은 약 10%에서 지금은 20% 수준으로 높아졌다. 문자 그대로 ‘국부민궁(國富民窮)’이다. 주요 산업은 국유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전력·통신·석유·은행·보험·연초 등 대표적인 국가 독점 분야 노동자는 전국 노동자의 8%에 불과하지만 임금은 약 55%를 가져간다.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사회 분야 국정 이념으로는 ‘공평 정의’가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공평과 정의가 경제 분야로 확대된 게 바로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의 패러다임 변화’다.
이는 12·5계획(2011~2015년)의 핵심 사안인 ‘좐볜(轉變)’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소다. ‘좐볜’은 투자에 의존하고 있는 기존 성장 패턴을 소비·서비스 중심으로 바꾼다는 게 핵심. 유명 칼럼니스트인 예주이는 “선진국의 경우 1인당 GDP가 5000달러를 넘어설 때 민부로의 전환을 경험했다”며 “좐볜 정책을 추진하게 될 시진핑 시기 가장 큰 경제 화두는 어떻게 하면 일반 국민의 소득을 증가시킬 것이냐에 있다”고 말했다. 민부는 곧 구매력 향상이요, 좐볜정책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이미 시작된 일이다. 중국은 최저임금 조정을 통해 노동자 임금을 매년 20% 안팎 올리고 있는 중이다. 12·5 기간 중 임금을 2배 올릴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민영기업 도시인 원저우(溫州)를 금융개혁 시범구로 지정, 국유은행의 독점을 깨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리유싱(李有星) 저장대 교수는 “원저우 지하 자금이 민간 금융회사 설립을 통해 양성화되고 있다”며 “시진핑 시기에 들면 각 분야에서 본격적인 독점 파괴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부 패러다임’은 우리나라 기업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중국을 단순 제조업 단지로 보는 데서 벗어나 소비시장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한진 KOTRA 중국실 부장은 “시진핑 시기에는 정부 주도 내수시장 확대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국내 기업 역시 구매력이 높아진 중국 소비자와의 소통 채널을 꾸준히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국유기업·정부관리들이 이미 기득권 세력이 돼 개혁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학계의 양심으로 알려진 우징롄(吳敬璉) 국무원발전연구센터 교수는 “지난 5~6년 동안 진행된 국진민퇴(國進民退·국가의 대두와 민간의 퇴조) 과정에서 국유기업과 행정관료들은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았다 ”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으로 향하는 시진핑 시기 중국경제의 큰 물결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우 교수의 생각이다.
국부에서 민부로의 패러다임 변화는 중국 경제의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중진국 함정'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민간의 힘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의 성장 방식은 따라잡기(Catch-up)단계에서는 유용했다. 그러나 민간 주도의 혁신 없이는 한 단계 점프는 불가능하다. 시진핑 체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정책적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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