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꺾여도 고급 침구 판매는 안 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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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취향에 일일이 맞추는 침구세트 ‘C&C 밀라노’의 에마누엘레 카스텔리니 대표는 “경기가 안 좋을 때 제품을 더 고급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기 설립된 가족회사를 맡아 이끌고 있는 4세대 경영인이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고객이 침대보의 크기·색·모양과 무늬를 직접 디자인하면 그때부터 이탈리아 북부 올레지오에서 장인이 제작한다. 실을 염색해 천을 짜는 것부터 시작한다. 대대로 물려받은 손기술로 각자 만드는 장인은 총 100명. 제품 완성에는 한 달이 걸린다.

 ‘C&C 밀라노’는 이렇게 고객 맞춤형으로 만든 침구 커버류를 고가에 판매하는 브랜드다. 침대보·이불잇과 베개 커버 세트가 이탈리아 현지에서 300만원대에 팔린다. 쿠션 커버 하나에 20만원쯤 한다. 만들어져 있는 제품은 없고, 전부 주문을 받은 뒤 제작을 시작한다. 19세기 시작해 4대째 내려오는 회사다.

 이달 초 한국 고객들을 만나러 방한한 이 회사의 에마누엘레 카스텔리니(62) 대표는 지난 10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기가 꺾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고급 침구 판매는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미국·일본·호주 등 11개국 시장 현황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1977년 아버지로부터 회사 대표 자리를 물려받았다. 원래 고급 맞춤형 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지만, 베르사체와 아르마니 같은 명품 업체와 거래하면서 품질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고 했다. C&C 밀라노는 자체 생산한 원단을 이들 명품업체에 공급했다. 카스텔리니 대표는 “오래 거래하면서 까다로운 명품 디자이너들의 입맛과 안목을 침구류에까지 적용하게 됐다”고 했다.

 2010년 이후 유럽, 특히 이탈리아가 불황에 빠졌을 때 ‘제품을 더 고급화한다’는 역발상으로 승부했다. “불경기엔 1등과 최고급 제품만 살아남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우선 이탈리아 밀라노 북동부에서 공급받던 리넨 원사부터 벨기에와 프랑스 접경 지역인 플랑드르산으로 바꿨다. ‘품질로 따져 전 세계 상위 1%에 든다’는 프리미엄 원사다. 이에 더해 포시즌즈와 불가리 같은 최고급 호텔 체인에 침구류를 공급했다. 이런 호텔에 묵는 상류층을 겨냥한 마케팅이었다. 자면서 C&C 밀라노 침구의 촉감을 느껴보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전략이 적중해서일까. 그는 “회사가 요즘에도 매년 매출이 10% 늘고 영업이익률은 15%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C&C밀라노는 리넨뿐 아니라 면으로 된 침구도 취급한다. 하지만 리넨이 70% 이상이다. 리넨은 면보다 보온성이 좋지만 구김이 쉬 가고 때도 잘 탄다. 손이 많이 간다는 얘기다. 그래서 카스텔리니 대표는 리넨 침구를 “상류층을 증명받는 제품”이라고 한다. 같은 크기의 제품도 리넨으로 만들면 면제품 값의 두 배 이상이 된다.

 한국에서는 지난 6월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매장을 열었다. 리넨으로 C&C 밀라노 침대·이불·베개 커버세트가 500만~600만원, 쿠션커버는 30만~50만원이다. 일반 수입 브랜드의 두 배 이상이다. 그래도 고객이 꽤 된다. 이달 11일 백화점 VIP고객을 대상으로 맞춤제작 행사를 열었더니 하루에 5500만원어치가 팔렸다.

 카스텔리니 대표는 “고소득층은 돈을 가치 있는 곳에 신중하게 쓰기 시작했다”며 “맞춤형 침구가 그중 하나이기 때문에 고객이 줄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같은 맞춤형 침구가 아시아 지역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2014년까지 일본·홍콩 등지에 매장을 더 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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