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막연한 원칙론으로 대한민국 이끌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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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차기 대통령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대한민국호(號)를 이끌어갈 선장이다. 향후 5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는 격랑과 폭풍이 예고돼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로 미·중 갈등은 불가피하다. 한·일, 중·일 간 영토분쟁에서 보듯 한·중·일 3국 간에도 물고 물리는 격돌이 예상된다. 북한 정세도 예측불허다.

 미국에선 다음 달 대선이 예정돼 있고, 중국은 리더십 교체를 앞두고 있다. 하강의 사이클에 접어든 일본 정치권은 우경화의 유혹에 빠져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최대 전환기를 맞은 동북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하고 불안정하다. 언제라도 파열음을 낼 수 있다.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차기 대통령은 대한민국호를 안전하게 끌고 갈 역량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가. 솔직히 불안하다. 국제정세의 엄중함에 비해 대권을 노리는 후보들의 인식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

 대선이 6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무소속의 안철수 등 세 유력 후보 모두 표심 잡기에 여념이 없다. 하루가 멀다고 경제민주화와 정치개혁, 복지 등에 관한 정책 구상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가장 중요한 국가의 안위에 관한 후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 상대하면서도 장차 통일을 이뤄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외교이고 안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후보들의 철학과 비전이 무엇인지, 그걸 이루기 위한 전략과 방책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막연한 원칙론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세 후보 진영에서 외교안보 정책 구상이라고 내놓은 것도 중구난방이다. 층위와 강조점이 다 다르다. 대미·대중 외교의 균형, 남북관계 개선, 북핵 문제 해결 등을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알맹이 없는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있는 느낌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과 대북정책에서 문제가 많았으니 이를 바로잡겠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미국 쪽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한·중·일 협력사무국 출범 1주년을 맞아 어제 열린 국제포럼에서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축사를 했다. 박 후보가 한·중·일 3국의 대화해와 책임을 강조하며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밝혔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두 후보 모두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변에서 거드는 전문가들이 많아도 그것을 후보가 자신의 머리와 가슴으로 소화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국제정세와 남북관계를 보는 후보 자신의 철학과 비전이 먼저다.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 이미 관 속에 들어간 전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관련 발언을 둘러싸고 정략적 공방이나 주고받는 얄팍한 수준의 인식과 사고로 어떻게 대한민국호를 끌고 나가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