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젊음이 꼭 좋기만 할까, 나이듦이 꼭 나쁘기만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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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년의 역사
팻 페인·팀 파킨 외 5인 지음
팻 페인 엮음, 안병직 옮김
글항아리, 2만8000원

“노년은 인생에서 힘든 시기입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늙은 케팔로스를 만나 이렇게 물었다. 케팔로스는 이렇게 답했다.

 “소크라테스여, (책임을 물을 것은) 그들의 노령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이라오. 분별력 있는 좋은 성격이라면, 노년은 견뎌내기 쉬울 테고, 그렇지 않다면 노년뿐 아니라 청춘도 고생보따리라오.”

 소크라테스가 이런 질문을 던진 것도 그 자신이 나이 든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 주인공인 노(老)작가가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에 공감했다면, 이런 책을 읽을 나이가 됐다는 얘기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니콜라스 마스의 ‘레이스 직공’. 집에서 일하는 노파의 모습을 위엄 있게 그렸다. 당시 네덜란드 가족생활 지침서에는 노인에 대한 공경이 강조됐다. [사진 글항아리]

 노년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전에 있었나 싶다. 그만큼 나이 듦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The Long History of Old Age』라는 원제에 충실하게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사에 나타난 노인의 존재 의미를 조명했다.

 흔히 과거에는 늙어서까지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예단하지만 저자들은 그야말로 노년의 역사에 대한 대표적인 고정관념이라고 말한다. 14세기 초의 한 영어본 구약 시편을 보면 ‘우리 삶의 나날은 70년이다. 어떤 힘에 의해 80년이 되기도 하지만, 그 힘은 고역과 슬픔’이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늙음의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예컨대 17세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이른 나이에 ‘늙은이’로 여겨졌다. 남성의 경우 60세 전후에 노인이라 불린 반면, 가난한 여성은 50세 전후면 어멈, 또는 노친네로 불렸다. 엘리트에게 노년으로서의 진입은 적어도 10년은 늦춰졌다. 안락한 생활 덕분에 상대적으로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노인이 가족의 존중과 배려 속에 행복하게 만년을 보냈을 것이란 추측도 신화에 불과하단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조차 핵가족이 가족 제도의 중심이었다.

 노년에 대한 풍부한 역사를 알면 알수록 딱히 정해진 노년의 모습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게 이 책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노년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노년의 경험은 각 개인의 신체 조건, 경제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고, 늙음에 대한 인식도 긍정과 부정이 교차했다는 의미다.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독자만 읽기엔 아까운 책이다. 230여 컷의 풍부한 도판은 문화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까지 매료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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