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세돌, 비범한 21에 의표 찔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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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본선 32강전> ○·이세돌 9단 ●·구리 9단

제2보(13~21)=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수만 가지 버전을 만들어 내듯 ‘중국식 포석’도 온갖 버전을 만들어냈습니다. 말하자면 바둑계 최고의 히트작인 셈이지요. ‘중국식 포석’만 모두 소개하려 해도 책으로 3, 4권 분량일 겁니다. 13으로 민 수는 지극히 최근에 등장했습니다. 전엔 A 자리에 있다가 슬그머니 한 칸 좁힌 흑▲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수지요. 이후엔 ‘참고도1’ 백1~5가 보통입니다. 실전에서 많이 두어지고 있지요.

 구리 9단은 그러나 백이 16으로 꼬부렸을 때 받아주지 않고 17로 두드렸습니다. 이런 걸 ‘취향’이라고 합니다. 17과 ‘참고도1’은 아직 선악이 가려지지 않았지요. 대부분의 기사가 ‘참고도1’을 선택하는 것은 그 쪽이 ‘실리적’이기 때문인데 구리는 17을 선택했군요. 이런 데가 구리의 매력입니다.

 이 장면에서 이세돌 9단, 약간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까요? 18, 20으로 빵 때려냈는데요. 아무튼 프로들은 빵때림을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구리가 21로 날아들자 갑자기 비수에 찔린 듯 다음 수를 두지 못합니다. 구리가 21 대신 B에 두었다면 그건 ‘참고도2’와 똑같습니다. 백이 한 점을 따내면 똑같고 경우에 따라 백은 C로 둘 수도 있으니까 정답은 ‘참고도2’ 백1로 가만히 모는 수였습니다.

 이세돌 같은 강자가 이런 미스를 범하는 게 이상한가요? 아닙니다. 21이 아니었다면 그 미스는 숨겨질 뻔했습니다. 21이란 비범한 수가 간발의 차이를 놓치지 않고 백의 미스를 부각시킨 겁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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