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람이 빚은 '모빌 교향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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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면에 매달린 수백장의 금속판이 해류에 흔들리는 해초처럼 우아하게 일렁거리며 춤을 춘다. 철사로 이어진 금속판들은 순간순간 미묘하게 표정과 몸짓을 변화시키면서 리드미컬한 군무(群舞) 를 만들어낸다.

천정에는 불규칙한 타원형의 띠 3개가 매달려있다. 얇은 철판을 연속시킨 원들은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면서 회전하고 꿈틀거린다.

바람에 펄펄 날리는 금속판들의 빛나는 율동과 은빛 와이어의 부드러운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시각적인 즐거움이란….

서울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에서 3~28일 열리는 팀 프렌티스(71) 개인전은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조각) 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작가는 미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키네틱 아티스트. 그의 작품은 플로리다 잭슨빌 국제공항, 듀크대학 어린이병원, 뉴욕 뱅크 오브 어메리카 등 미국 전역을 포함해 유럽.일본 등지에 자리잡고 있다.

국내엔 최근 삼성 노블카운티에 작품을 설치했다. 이번 전시엔 자신의 대표작 20여점을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원작은 야외에 10~20m크기로 설치됐으나 이번엔 한자리에서 모두 보여주기 위해 3m 이내로 축소해 출품했다. 실내 전시장엔 선풍기를 설치해 바람의 흐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동안 국내에 조지 리키 등의 작품이 일부 소개된 바 있으나 이처럼 많은 키네틱 아트 작품이 한자리에서 선보이기는 처음이다.

프렌티스의 작품 구조는 철사로 만든 작은 시소를 반복적으로 연결하고 마지막 시소 양끝에 얇은 금속제 삼각형.사각형.원형을 이어붙인 것.

공기의 흐름에 따라 시소들이 미묘하게 움직여 해초의 흐느적임이나 매스게임의 율동같은 춤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키네틱 아트의 다양한 분야와 수많은 작가를 통틀어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는 평가를 받고있다.

국내 첫 개인전에 작품을 직접 설치하기 위해 방한한 프렌티스는 "공기의 움직임은 사랑과 행복, 두려움과 쓸쓸함 같은 다양한 분위기를 갖고있다" 며 "내 작품은 공기에 디자인을 맡겨 놓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공공 조형물을 많이 설치한 그는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작품을 위해 건물을 세운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다" 고 말했다.

작품이 리드미컬하고 음악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작가 자신이 기타를 치고 포크송을 부르는 음악가이기 때문. 한때 가수로도 활동했고, 요즘도 가끔씩 친지들을 불러 작은 부부음악회를 연다고.

프렌티스는 예일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오랫동안 설계사무실을 운영했던 건축가 출신. 40대 늦깎이로 키네틱 아티스트로 발을 내디딘 뒤 작품의 우아한 움직임과 조형미를 인정받아 인기를 누리고 있다. 02-511-0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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