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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재무부면 영원한 재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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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일요일 아침 집 앞을 나서는데 청설모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다니고 길가를 줄달음친다. 계절이 변하고 있어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마음이 바빠진 청설모들이 몸까지 바빠진 게다.

 찬바람이 불면서 바빠진 건 청설모만이 아니다.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일하는 각 부처 주재관들은 요즘 정신이 없다. 올해가 대선의 해이기 때문이다. 미국 땅의 한국 주재관들이 바쁜 건 ‘반전스럽게도’ 한국 대선 때문이다. 유력 대선후보 측에서 너나없이 정부 조직개편을 약속하고 있어서란다. 새 대통령 진영이 구상하는 정부 조직개편안에 ‘우리 부처’가 살아남아야 하고, 더 커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사례를 수집하는 과외 일에 정신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대규모 정부조직개편 사례는 미국에 없다. 미국의 재무부는 1789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취임했을 때도 재무부(Department of Treasury)고, 223년이 지난 지금도 재무부다. 1903년 상무부와 노동부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기능 일부가 떨어져 나갔지만 여전히 재무부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범한 한국의 재무부는 경제기획원(1961년), 재정경제원(94년), 재정경제부(98년), 기획재정부(2008년) 등 거쳐간 대통령 수만큼 명칭과 조직이 수술을 받았다. 그나마 기획재정부는 낫다. 상공부→동력자원부(1977년)→상공자원부(93년)→통상산업부(94년)→산업자원부(98년)→지식경제부(2008년)를 거치며 불과 60여 년 만에 누더기가 돼버린 지식경제부라는 명칭엔 미국의 상무부를 연상케 하는 단어조차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초 한 야당 의원은 워싱턴을 방문해 자신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이라고 소개했더니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란 부처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 진땀을 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역대 정부마다 정부 조직개편을 할 때면 빠지지 않는 설명이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사회 환경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200년이 넘도록 ‘재무부’란 명칭과 조직의 골간을 유지해 온 미국은 고여 있는 사회일까.

 잦은 정부 조직개편의 폐단 중 하나는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역대 장관들이다. 상공부 장관을 현재의 지식경제부 장관과 나란히 소개할 수가 없어서다.

 반면에 미국 재무부 홈페이지에는 223년 동안 거쳐간 75명의 역대 장관들의 사진과 업적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초대인 알렉산더 해밀턴에서부터 무려 14년을 재임한 알버트 갈라틴, 그리고 로버트 루빈까지.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구호로 역사는 바로 서지 않고, 제2 건국이란 구호로 건국은 다시 되지 않는다. 역사를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다시 쓰는 민족과 역사를 존중하고 지키는 민족 중 누가 더 현명한가.

 미 국무부에서 근무하는 한인 1.5세 줄리아나 김은 이렇게 말했다. “정권교체기에 왜 공무원들이 바빠져야 하죠? 대통령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공직은 연속성 있게 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유구무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