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신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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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30면

“아빠, 에세이를 잘 쓰기 위한 아빠의 방법론 몇 가지만 생각해 보고 말해 줄래요?” 매번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내게 그런 방법론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모처럼 아들녀석이 진지하게 부탁한 일이라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답을 궁리해 본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들,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해 여섯 개의 사자성어로 설명해 볼게.
아전인수. 내 논에 물을 끌어들인다는 말이지. 소재는 도처에 있고, 소재에는 귀천이 없어. 자신이 잘 아는 것이면 더 좋겠지만 잘 모르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든 내 경험의 논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이야. 삼라만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에세이는 내 논에 관한 이야기거든.
원교근공. 멀리는 사귀고 가까이는 공격하라. 소재가 정해지면 그것과 관련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낱말들이 있을 거야. 그것들을 경계해야 해. 가까운 것들은 상투적이기 쉬워. 새롭지 않으면 과감하게 쳐내는 게 좋아. 멀리 있는 것들에 눈을 돌려보렴. 전혀 다른 분야, 다른 형식에. 조금만 방심하면 신변잡기에 머무르기 쉬운 게 에세이야.

맹인모상.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쓰는 게 좋아. 글을 쓸 때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가 너의 눈이야. 눈을 크게 뜨고 새롭게 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다. 잠시 눈을 감는 것이 필요해. 예전에 TV에서 독일의 교육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 선생이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가는데, 일렬로 줄을 서 앞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감은 채 걸어가게 하는 거야. 눈을 감자 쉴 새 없이 떠들던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조용해져. 왜냐하면 전혀 새로운 숲이 아이들에게 와락 달려들기 때문이지. 그렇게 자주 다닌 숲이지만 예사로 넘겼던 새소리, 벌레소리와 나무 냄새, 흙 냄새와 뺨에 와닿는 햇살의 따뜻함 같은 숲의 아름다운 소란을 만끽하려고 아이들은 자신의 온몸을 한껏 여는 중이기 때문이지. 그 아이들이 눈을 뜬 다음 바라보는 숲은 얼마나 새롭고 경이롭겠니? 에세이는 그렇게 쓰는 거야.

용두사미. 시작은 용 머리처럼, 마무리는 뱀 꼬리처럼. 모든 글쓰기가 다 그렇겠지만 에세이는 짧은 글이기 때문에 특히 첫 문장이 중요해. 첫 문장은 용머리처럼 강렬하고 박력 있고 매력적이라야 해. 용의 머리를 보면 거기에 낙타의 머리, 사슴 뿔, 토끼 눈, 소의 귀, 돼지 코가 다 들어 있지. 그만큼 첫 문장에 공을 들이는 거야. 그렇다고 첫 문장을 쓰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일단 초고를 다 쓴 다음 첫 문장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쪽이 좋아. 글의 마지막은 뱀 꼬리 같아야 해. 에세이는 하늘이 아니라 땅의 이야기니까. 땅으로 내려와 뱀의 몸으로 바닥을 밀고 가야 해. 혹시 뱀이 사라지는 것 본 적이 있니? 뱀 꼬리의 날렵하고 유연한 곡선. 그렇게 마무리지어야 여운이 남는 거야. 짧은 글에 긴 여운이.

절차탁마. 일단 초고는 단숨에 쓰는 게 좋아. 그 다음에 자르고 갈고 쪼고 닦을 거니까. 첫 문장도 이때 결정하면 돼. 어쩌면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쓴 글을 고치는 사람일지 몰라.

아들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에세이를 쓰는데 방법론 같은 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거야. 아빠를 보렴. 그러니 여섯 번째 사자성어는 네가 생각해 보길.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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