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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선거 넘어서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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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호 30면

한국 정치는 동네북이다. 비호감에 왕재수 취급을 받을 때가 많다. 지역구 행사장에서도 “안 오시면 좋겠다”는 모욕을 당하기 일쑤인 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현실이다. 젊은 층에게 정치란 뻔뻔한 것, 사기 치는 것쯤으로 통한다. 정치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마저 임기 내내 ‘여의도 정치’를 부담스러워 했다.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터지던 1년 전쯤 이명박 대통령을 잠깐 만날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말 국회에 해머가 등장했을 때 해외에서 고생 좀 했다. 각국 정상들이 ‘한국엔 투표로 결정하지 못하는 국회 사안이 따로 있느냐. 신기하다’고 물어서 답변이 궁했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최상연 칼럼

그래도 한국에선 모든 길이 정치로 통한다. 누구든지 ‘뜨기만 하면’ 정치판으로 향한다. 정확하겐 빨려 들어간다. 안철수 현상이란 게 따지고 보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요즘 대선 주자들이 벌이는 ‘묻지마 영입’도 같은 범주다. 정당은 선거철만 다가오면 당명을 바꿔 정체성에 분칠하고 새 인물 타령을 한다. 국가경영의 식견을 밝힌 적이 없고, 이해관계 조정력을 검증받지 않아도, 이름만 알려지면 어느 날 갑자기 정치인이 된다. 그러다 보니 정치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없다. 전 국민이 축구 전문가인 것처럼 모두들 정치 9단이 된 탓일까.

그래서 악순환이다. 국회엔 ‘초선 의원’이 늘 절반 이상이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12월 대선판마저 아마추어 바람 속에 갇혔다. 전문가적 정신과 판단력, 기술로 충만한 게 프로다. 선거란 그런 프로들이 국가 체제를 바꾸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다. 어떻게 바꾸려 하는지 유권자들이 알아야 할 텐데, 우린 깜깜이 선거가 한창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대진표도, 후보와 함께 일할 인물도, 후보의 정책도 흐릿한 안갯속이다.

정치 지도자를 뽑는 방식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민주적 절차와 거리가 먼 중국조차 프로 지도자를 배출하느라 골몰한다. 초급 간부 때부터 이런저런 경력을 쌓게 하며 인간 됨됨이와 능력을 끊임없이 검증한다. 선진국은 더 말할 게 없다. 미국에선 스티브 잡스가 하루아침에 대선에 등판하는 사건을 상상하기 어렵다. 정치판엔 프로 자원이 넘치고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 체제가 되려면 제대로 된 정치 훈련을 받은 이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우린 정치 훈련에서 배제된 사람이 너무나 많다. 우선 공무원과 교원, 10대 청소년은 원천적으로 정당 가입이 금지돼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헬무트 콜이나 마거릿 대처는 청소년기부터 당원으로 활동하며 검증받았다. 워싱턴 정가에는 의원 보좌관으로 자원봉사에 나선 대학생이 수두룩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북유럽 정당에선 지금 20대 여성 대표까지 나왔다.

게다가 우린 경쟁을 막는 법까지 있다. 사전 선거운동 금지법은 일본에서 1920년대 만들어진 관 주도의 정치문화가 배경이다. 평상시엔 정치활동을 막다가, 선거 땐 아마추어를 공천해 쉽게 당선시키는 불공정 선거법이라 할 만하다. 미국에서 선거에 이기려면 저녁마다 홍보 팸플릿을 들고 가가호호 방문한다. 운동화가 몇 켤레 닳았다는 당선자가 많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불법이다.

정치 인재야말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훌륭한 재목이라도 오랜 기간의 훈련과 경쟁을 통해 다듬어진다. 그러자면 중요한 정치 예비군인 공무원과 교원, 청소년에게 정당 문이 열려야 한다. 경쟁을 막는 법은 풀어야 한다. 정치 인재 양성을 정당에만 맡길 일도 아니다.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처럼 기업과 사회단체도 지도자 양성을 위해 나서야 한다. 프로가 대접받는 게 다원화된 사회다. 정치야말로 그런 분야다. 프로 정신에 충만한 프로 정치인이 넘칠 때 정치가 살아난다. 모두가 정치를 살리자면서 우리 사회는 왜 정치인 훈련과 경쟁에 인색한지 모를 일이다. 아마추어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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