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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애플 특허전쟁의 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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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강성욱
GE코리아 사장

최근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소송 1심에서 미국 법원 배심원들이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아직 판사가 내리는 최종판결이 남아 있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정보기술(IT) 업계를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의 이번 쟁송은 30여 년간 IT 업계에 몸담았던 종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큰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외형적으로 봤을 때 이번 쟁송은 사용환경(UI) 등 다양한 디자인 요소와 기술을 둘러싼 특허가 핵심이다. 세기의 특허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초미의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누가 어떤 특허를 침해했는지를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쟁송을 향후 전략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치열한 전술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세상에 처음 공개했을 때의 충격은 매우 컸다. 애플과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입지를 구축했고, 사용자의 감성을 감안한 디자인으로 시장과 소비자의 기대수준을 상향평준화했다. 시작단계에서 봤을 때 스마트폰의 대중화 시대를 앞당긴 아이폰은 ‘테크놀로지’의 혁신이라기보다는 ‘디자인’ 측면에서의 창조성과 혁신을 통해 소비자를 파고들었다. 전에 없던 UI를 제공하면서 매니어를 비롯한 사용 계층 기반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이튠스와 앱스토어로 대변되는 자신만의 생태계를 만들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했다. 물론 자신‘만’의 생태계는 폐쇄적일 수 있다는 맹점이 있지만, 한번 구축된 생태계는 큰 투자 없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렇게 독주하던 애플을 위협하기 시작한 기업이 삼성이다. 삼성은 특유의 기술력과 속도·추진력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까지 달성했다. 삼성이 택한 경로는 애플과 확연히 다르다. 가전과 IT기기 분야에서 확보한 제조역량과 브랜드 파워 등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을 기반으로 성능 향상을 추구했다. 애플과 삼성, 양사가 택한 노선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는 사실 판단하기도 어렵고 논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애플은 성능 측면에서 갤럭시 시리즈가 아이폰을 앞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다.

 필자의 생각에는 애플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혹시라도 삼성이 기존의 ‘제조의 수월성(manufacturing excellence)’이나 기술혁신을 통한 기능 추가 및 향상 등 하드웨어(HW) 기반의 사고를 뛰어넘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지배력을 기반으로 애플과 대응되거나 혹은 이보다 더 우수한 생태계를 겨냥한 고차원적인 글로벌 전략으로 사고를 전환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는 국내 벤처 기업이 개발했다. 하지만 MP3 플레이어라고 하면 떠오르는 제품은 애플 ‘아이팟’이다. 사용자의 편의와 감성을 자극하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능 덕택이다. IT업계에서 제조를 기반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우수한 기술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의 감성을 한 발 앞서 파악하고, 그들의 마음을 훔치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조와 인프라 및 금융 기업으로 알려진 GE 역시 연간 25억 달러 정도의 매출을 SW 관련 분야에서 올리고 있다. 2015년까지 이 분야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산업용 소프트웨어 및 빅데이터 애널리틱스 같은 새로운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IT강국으로 불리지만, IT와 관련된 HW 중심의 강국이라는 표현이 아마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SW나 콘텐트 사업의 경우 국제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이라면 HW와 SW가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하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큰 편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분쟁을 통해 국내 수많은 제조기업들이 기존의 HW 기술 경쟁력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태계 구축이라는 비즈니스 전략의 필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성욱 GE코리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