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달라진 동물의 법적 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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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법정에서 동물의 지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오늘날 동물은 법정 피고인 자리에 앉을 수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귀양 떠난 코끼리가 등장한다. 1411년 일본 왕이 조선 태종에게 큰 선물을 바쳤다. 당시 조선 땅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코끼리였다. 신기한 코끼리를 구경하며 놀리던 이우라는 관리가 그만 코끼리 발에 밟혀 목숨을 잃었다. ‘범인’ 코끼리를 피고인 삼아 재판이 열렸다. 살인을 했으니 사형감이었지만 일본 왕의 선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내려진 벌은 귀양살이. 코끼리는 전라도의 한 섬에서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만약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코끼리가 아니라 코끼리 주인인 왕이 피고인이 돼야 한다. 현행법상 동물은 피고인이 될 수 없다. 우리를 탈출해 사람을 문 곰의 주인과 서울 신월동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뱀의 주인이 형사처벌 대상이 된 게 대표적 사례다.

 동물은 민사소송의 원고나 피고도 될 수 없다. 2009년 9월 황금박쥐·수달·고니 등 동물과 동물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도로공사로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니 공사를 취소해 달라는 것. 하지만 법원은 각하했다. 재판부는 “소송 당사자는 자기 이름으로 재판을 청구하거나 소송상의 효과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하기 때문에 동물을 원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물을 ‘물건’으로 다루는 법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는 경기도의 한 야산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던 개 5마리와 닭 8마리를 발견해 데려왔다. 박 대표는 구조활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특수절도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 대표는 “학대받고 있는 동물을 구조한 것일 뿐”이라며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법과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에서도 동물의 법정 출두는 화제다. 프랑스에서는 끔찍하게 학대를 당한 강아지 ‘맘모’가 악질 주인과 법정 대면을 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법정에서는 교통법규를 위반한 피고인이 당시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탐지견을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강신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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