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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동의 중국世說] 조어도 분쟁을 계기로 본 동북아 안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내가 죽은 다음 항복문서에 관인을 찍어 일본 사령관 <이토>에게 넘겨주시오". 이는1895.2.12 청나라 북양함대 사령관 丁汝昌이 자살 직전, 영국인 군사고문 <타일러>에게 토해낸 처절한 절규다. 청일전쟁의 마지막 전투 씬(scene)이 물씬 풍긴다.
조어도 분쟁의 역사적 배경과 현 상황
일본이 조선을 짓밟고 중국의 영토를 강탈한 청일전쟁 결과로 "조선국의 완전한 독립국 승인과 요동반도, 대만 및 팽호열도 할양"등을 골자로 한 "시모노세키 조약"이 탄생된다. 1895.4.17 시모노세키의 春帆樓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국의 '이홍장'이 조인한 이 조약은 일본에 의한 동북아의 역사적 비극과 조어도(釣魚島)분쟁의 근원이 된 것이다
일본은 이 조약에 의거, 대만과 함께 조어도를 중국으로부터 할양 받아 "오키나와" 현에 편입시킨다. 그 후 1951년 미일 양국은 "샌프란시스코"강화협정으로 조어도를 일본영토에 포함시켰으며, 미국이 이를 관할해오다가 1972년 "오키나와"와 함께 일본에 반환했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역사적, 국제법적 측면에서 조어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무력으로 영토를 약탈한 것은 국제법상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조어도가 양국의 갈등구조를 높인 것은 1968년 섬 부근해역의 천연자원 발견이었다. 이 섬의 가치가 갑자기 상승되자 양국은 집착의 도를 높이다가 결국 1972년 중-일 수교 시에는 이 섬을 일단 무인도로 두고 추후 해결토록 하자는 선에서 적당히 봉합했다.
그 후에도 수차례 갈등이 노정되다가 드디어 일본이 최근 9.11 釣魚島를 국유화 조치하는 초강수를 두자 중국은 즉각 순시선과 해양감시선 및 군함 등을 조어도 부근에 급파했다. 이에 일본도 해양순시선 50여척을 투입, 동 중국해는 일촉즉발의 충돌위기감 마저 감돌고 있다. 아니 대만과 일본 순시선은 물대포로 이미 물리적 충돌을 시작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시기적으로 일본이 1931년 9월 18일 '류탸오후(柳?湖) 사건(만철 폭파 사건)'을 조작한 "만주사변" 발발일과 때를 같이 하고 있어 중국을 더욱 자극했다. 중국의 10만 붉은 군중들은 각 지역에서 봉기, "영토수호, 타도 일본!"을 외쳤고, 정부 및 언론도 무차별 對日 공격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일본의 제국주의적 망동에 대해 유력 홍콩언론은 "중. 한. 러 3국이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본질을 직시하고 對日 외교상 연합전선을 구축, 대응해야한다"고 언급했다. 또 이 언론은 "全 亞洲人들이 연합해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철저한 배상을 촉구하고, 일본인들의 군국주의를 완전 매장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 분쟁의 가열은 불안정한 일본 '노다' 정권의 우경화 편승과 총선을 앞둔 일본 각 정당 및 각료들의 국수주의적 행태, 엽기적 불량배인 우익 단체들의 망동 등이 그 원인이다. 게다가 조어도 관련 미일안보조약(제 5조) 에 의한 미측의 안보 언질도 일본 우익세력이 광분하게 하는 데 힘을 보탰을 것이다.
저 왜인들은 제 조상들이 아시아 제국에 잔악무도한 침략만행을 범한 전범임을 망각하고 배상도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시금 남의 영토 약탈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강도의 근성을 지닌 일본이 일찍부터 경성파워를 갖게 된 것이 동북아 전쟁 비극과 불안정 구조의 원초적 불씨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중-일 신 냉전" 전운과 동북아 안보
지난 5.13 한-중-일 3국은 베이징에서 제 5차 정상회의를 개최,"3국간 투자보장협정"에 서명하고 "3국간 FTA 연내 협상개시"합의 등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영토와 과거사 문제 등에서는 갈등이 표출되어 암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더니 7월말에 한국의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 공안에 고문을 받은 사건이 터져 한국의 언론은 물론, 정계까지 강타하며, 한-중 간 외교문제로 비화되었다. 또한 중국은 한국의 "이어도" 가 자신들의 관할해역이라며 붉은 마각을 들어내고 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8.10 독도를 방문하자 일본은 무례한 총리의 항의서신을 보내더니 과거사 인정도 다시 부인하면서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망언을 하고 있다. 급기야 일본은 유엔까지 영토분쟁 무대로 삼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신 3국냉전"의 현장이 숨 가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동북아 지역은 냉전이후에도 남북한 대치와 열강들의 패권적 파워게임이 치열한 냉전 잔재구조의 무대이다. 여기는 아시아 회귀정책으로 동북아 패권을 지속하려는 미국과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강력히 도전하는 중국의 각축이 뜨겁다. 게다가 미국에 의지하여 주변국의 영토나 탐내는 일본, 동북아 역내에서 APECK을 개최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러시아, 핵무기 개발과 대남도발로 생존전략을 삼는 집단 등이 엉켜 살얼음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급성장한 중국의 파워에 긴장한 미국은 제국주의적 환상을 가진 일본을 재무장 시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의 힘의 역전에 불안 해 하며 미국을 등에 업고 열강세력으로 잔존키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러시아와 안보 및 경협을 강화하는 한편, 완충지대(buffer zone)를 제공하는 북한을 감싸면서 대응하고 있다.
이렇듯 화약고를 지닌 동북아 지역은 공고한 안보시스템 구축은 고사하고, 일본의 좌충우돌하는 탈 이성과 중-일 양국의 영토분쟁 과열로 지역안보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일찍이 'T.H 헉슬리' 는 " 영토가 넓다고 위대한 것은 아니고, 영토가 국가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라고 설파했다. 이제 일본과 중국은 "득농망촉"(得?望蜀 :농 지방을 얻자 촉 땅을 탐낸다)의 영토욕을 버리고 진정한 아주 평화를 위해 근신해 주기 바란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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