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법조계 잇는 다리가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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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사법상 무체물이나, 배타적 지배가 가능하고 무한 복제가 불가능한 디지털코드 이미지’ ‘몬스터 드랍이나 퀘스트 수행, 장터 구매로 얻은 뒤 인챈트로 강화할 수 있는 무기’.

 게임 아이템을 전자는 법적으로, 후자는 게이머의 시각으로 풀이한 것이다. 게임계와 법조계 사이는 이 둘의 차이만큼이나 멀다. 이를 통역하는 변호사가 있다. 게임 개발자 출신 법률가인 이홍우(37·사진) 넥슨 법무실장이다. 최근 서울 역삼동 넥슨 본사에서 만난 이 실장은 “20대의 5년은 게임 개발에, 30대의 5년은 법률에 몰두했다”며 “세계적으로 미개척 영역인 ‘게임법’의 체계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95학번인 그는 1999년 게임 개발자로 넥슨에 입사했다. 같은 과 선배인 김정주(86학번) 넥슨 창업주가 후배들에게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자주 했었다. 당시 회사 직원이 40명, 평균연령은 22세였다. 법조계로 눈을 돌린 것은 2004년이다. 게임 특허 업무와 관련해 법을 살펴봤는데, ‘논리 언어’라는 점에서 법과 컴퓨터 언어는 닮아 있었다. 그는 “사법시험이 뭔지는 아느냐”는 동료 개발자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퇴사해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2006년 합격했다.

 공대생에 게임족인 그는 사법연수원의 ‘소수민족’이었다. 형법 수업 때 판결문 작성 기법이 프로그래밍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혼잣말로 “이거 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겠는데”라고 말했다가 동기들 사이에 “홍우는 판결문을 컴퓨터로 자동으로 만든다더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는 2010년 넥슨에 복귀했다. “게임계와 법조계를 잇는 중간 다리가 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법정에서도 게임머니, 계정, 불법 서버 같은 문제가 자주 다뤄진다. 중국 법조계도 국내 게임 판례를 많이 참고한다. 하지만 게임 아이템이 ‘물건’인지에 대한 규정도 없을 정도로, 심도 있는 법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법조인들이 게임 세계관이나 사용자 문화를 몰라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게임 선진국인 한국이 관련 법 체계를 잡으면 세계에서 배워갈 겁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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