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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기획] 진돗개, 영국 케널클럽 등록…세계 명견 반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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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영국 런던 피카딜리가에 있는 케널 클럽(Kennel Club) 본부. 30명의 대의원이 열띤 논의 끝에 진돗개를 독립품종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케널 클럽은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단체. 케널 클럽에 독립품종으로 등록되는 것은 세계적 '명품견'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유의 강인함과 영민함으로 오랫동안 '국민견'으로 사랑받아 온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 그 진돗개가 이제 콜리(영국).셰퍼드(독일).푸들(프랑스) 같은 세계적인 명견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남궁욱 기자

'보신탕'에 딴죽을 건 여배우 때문에 우리에겐 프랑스가 유명해졌지만, 사실 유럽의 진짜 '애견 선진국'은 영국이다. 워낙 온 국민이 개를 사랑하는 데다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겹쳐 '개들의 천국'이 됐다. 외래종의 유입이 힘든 섬에는 순종 견들이 많게 마련. 이런 영국에선 1년에 '도그 쇼(개 박람회)'가 무려 3000여 회나 열린다.

케널 클럽은 이렇게 유별난 영국인들의 개 사랑 전통의 최정점에 서 있는 단체다. 클럽이 생긴 것은 자그마치 132년 전인 1873년. 영국 여왕의 후원까지 받는 이 클럽은 영국 내 모든 견종의 혈통 등록을 주관한다. 매년 3월 세계 최대 규모의 '크러프츠 도그 쇼'를 열기도 한다.

이런 단체인 만큼 케널 클럽의 독립품종 등록 심사는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품종의 역사와 사육 두수 및 환경은 물론 유전 질환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이러다 보니 이 클럽이 인정하는 독립품종은 모두 196종뿐. 다른 애견단체들이 300~400종 정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몹시 '짠' 편이다.

진돗개가 이 까다로운 심사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것은 2002년. 삼성에버랜드(대표 박노빈)와 진도군청이 손을 잡았다. 군청 측에서는 우수한 진돗개를 계속 공급했고, 에버랜드 측이 영국인 개 번식전문가 맥 카펜터를 통해 일을 추진했다. 그녀는 일본의 아키다를 등록시킨 경력이 있었다.

노련한 전문가까지 동원했지만, 등록 절차는 쉽지 않았다. 2002년 8월 한 살배기 수놈 '장군'이 처음으로 영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다섯 마리가 더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머물며 교배를 해도 품종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케널 클럽 관계자들은 진도를 방문, 관리 실태를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에버랜드 측은 모기업의 힘을 빌려 크러프츠 도그 쇼의 후원까지 하면서, 진돗개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런 3년간의 노력 끝에야 진돗개는 지난 3월 정식으로 케널 클럽에 품종 인정 신청을 낼 수 있었고, 두 차례의 심사를 거쳐 등록증을 거머쥐었다.

진돗개는 날카로운 케널 클럽 심사위원들의 눈에도 흠잡을 것이 없는 명견이었다. 우선 섬인 진도에서만 철저히 격리돼 온 데다 정부까지 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해온 덕분에 종 보존이 완벽했다. 크기도 보통 정원이 딸린 서양 주택에서 기르기에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게다가 영리해 배변 훈련이 쉬운 데다 서구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충성심도 아주 뛰어났다.

이런 케널 클럽의 심사 결과는 이제 세계 애견시장에서 진돗개의 우수성을 뒷받침하는 보증수표가 됐다. 실제로 케널 클럽은 영국에서 유통되는 진돗개들에 보증서를 발급할 예정이다. 그동안은 진도군이 발급한 혈통보증서만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케널 클럽의 보증서도 함께 따라다니게 되는 것. 듬직한 '족보' 하나가 더 생긴 셈이다. '애견 신흥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케널 클럽의 영향력이 큰 만큼 새 족보를 얻은 진돗개 수출도 활성화할 전망이다.

이 밖에 진돗개는 케널 클럽으로부터 공인을 받았기 때문에 당장 내년부터 크러프츠 쇼의 경쟁 부문에도 참가할 수 있다. 관람객만 무려 10만여 명이 몰려드는 크러프츠 쇼의 경쟁 부문은 '개들의 올림픽'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뽑히는 '올해의 개'는 전 세계 주요 신문과 방송을 장식한다. 이제 진돗개도 그런 날을 맞지 말란 법이 없다.

이번 등록에 대해 김종운 에버랜드 상무는 "보통 케널 클럽에 독립품종으로 등록하려면 4~5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진돗개가 얼마나 우수한 견종인지 알 수 있다"며 "이번 성과로 한국이 애견문화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순종 진돗개는 …

■ 얼굴 :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역삼각형이나 너무 뾰족하지 않음.

■ 눈 : 아몬드 모양이나 눈 끝이 위로 향함.

■ 코 : 흑색이지만, 백구 중엔 담홍색도 있음.

■ 등 :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직선임.

■ 다리 : 앞.뒷다리 모두 곧게 뻗어 있음.

■ 꼬리 : 정강이까지 닿는 길이로 위로 향해 있음.

■ 성격 : 용맹.기민하며 충성심이 뛰어남. 낯선 이의 손길을 싫어함.

'솔로'(右)

■ 성별 : ♀

■ 생일 : 2004년 6월 24일

■ 출생지 : 영국 브리스틀

■ 몸무게 : 13㎏

■ 체고 : 어깨부터 45.7㎝

■ 성격 : 아주 활동적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유순

*** 알쏭달쏭 Q&A

한국인들의 진돗개에 대한 관심은, 지식에 비해 지나치게 앞서간다. 쉽게 말해 진돗개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는 건 없단 얘기. 진도군의 진도개시험연구소 이계웅 수의사의 도움으로 진돗개에 대해 알아봤다.

*** 진돗개와 진도개, 어느 쪽이 맞나 ?

표준어 표기법에 따르면 '진돗개'가 맞다. 그런데 진도에서는 진돗개를 '진도개'라고 쓰기를 고집한다. 뭍의 진돗개들과 구분하기 위한 것. 그래서 진도에 관리하는 진돗개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한국진도개보호육성법'에도 진돗개 대신 진도개라는 명칭이 채택됐다. 이 법에선 '진도의 진돗개를 진도개라고 칭한다'고 돼 있다.

*** 순종 진돗개는 돈 주고도 못 산다 ?

힘들지만 살 수는 있다. 진도군은 매년 3개월 미만의 순종 진돗개 3700두를 팔기 때문. 이 강아지들은 부모가 천연기념물인 순종이다. 그런데 문제는 혈통이 모든 걸 보장하지 못한단 점. 이 강아지들이 자라서 좋은 진돗개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이 강아지들은 진도를 떠나는 즉시 천연기념물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 진돗개는 외래종이다 ?

진돗개의 유래에 대해선 설이 많다. 그 중에 남송 상인들이 전파했단 설과, 조선시대 몽골에서 들여왔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 검사 결과 진돗개는 동아시아견들과 비슷한 형질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북방에서 왔다는 주장이 힘을 잃은 것. 요즘은 한반도 토착견으로 보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 진돗개는 회귀본능이 강하다 ?

7개월 만에 주인을 찾아온 진돗개가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이런 회귀본능은 진도의 애견문화와 관련이 깊다. 진도에선 개를 묶어 기르지 않는다. 또 집 잃은 개가 있어도 함부로 취하지 않는다. 게다가 섬이라는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달리 갈 곳도 없다. 수세기에 걸쳐 이런 환경에서 살아온 덕분에 진돗개는 강한 회귀본능을 가지게 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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