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헌병·한국 경찰, 언어소통만 돼도 갈등 덜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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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박상융 평택경찰서장(오른쪽)이 미군 헌병들과 합동 순찰에 나선 길에 패트릭 매킨지 미 51전투비행단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평택경찰서]

지난 7월 5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신장동 로데오거리. 미군 헌병 7명이 주차단속 문제로 시비를 벌이다 한국인 3명에게 수갑을 채웠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미군에 “수갑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해당 미군들은 불법체포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박상융(48·총경) 평택경찰서장은 이 사건을 “의사소통의 부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미군 헌병들은 한국어를 못하니까 경찰에 입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출동한 경찰관들도 영어는 서툴고 마음은 급하니까 한국말로 ‘수갑을 풀라’고 하면서 사건 처리가 길어진 겁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평택경찰서는 『순찰 영어 가이드북』과 CD 제작에 나섰다. 미군과 한국 경찰관이 함께 사건을 처리할 때 영어 또는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다. 가이드북은 가정폭력·절도 등 미군 관련 신고와 합동순찰, 미군 교통사고 등 30여 개 상황을 문답식으로 소개한다. 현재 원고 제작을 마쳤고, CD를 녹음중이다. 관련 예산 200만원은 경찰서 비용으로 충당했다.

 박 서장은 “책이 나오면 모든 경찰관들에게 나눠주고 공부하게 한 뒤 평가도 할 예정”이라며 “미군 측에도 검수를 부탁해 헌병들도 소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993년 경찰에 몸담은 박 서장은 본래 29회 사법시험(연수원 19기) 출신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경찰에서 수사와 범죄예방 활동을 잘하면 억울한 피해자가 줄어 변호사도 필요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경찰이 됐다고 한다.

 미군과 인연도 짧지 않다. 그는 지난해까지 동두천경찰서장을 역임했다. 주한미군 부대 캠프 케이시가 있는 곳이다.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성폭행 사건 2건을 직접 지휘했다. 올 1월 부임한 평택에는 미7공군 사령부와 제51전투비행단이 배치된 오산 공군기지(K-55)가 있 다. 박 서장은 “두 경찰서를 거치면서 문화적 차이가 미군과 한국 경찰 간 사건처리에도 이견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번 가이드북이 원활한 사건처리 등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택=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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