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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도인 묵향 가득한 북카페 … 빵 구우며 벗들을 기다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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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헌 전 남영비비안사장이 부인 이형숙 한국관광대 겸임교수와 함께 북카페 앞에 흐르는 석사천 징검다리를 건너며 웃음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돌아가리라. 시골의 논밭이 거칠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중국 남북조시대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읊은 ‘귀거래사’의 첫 구절입니다. 옛날 한국과 중국의 선비들은 도연명처럼 아름답게 은퇴해 시골에서 한가로이 여생을 보내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가난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신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려면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종헌(65) 전 남영비비안 사장은 용감한 사람입니다. 억대 연봉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뿌리치고 2003년 7월 강원도 홍천 산골에 들어가 북카페를 차렸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말 안장을 닮았다는 안마산이 바라보이는 춘천시 석사동으로 옮겨 북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Peace of Mind)’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서면 고소한 빵 냄새와 은은한 묵향이 오묘한 조화로 다가옵니다. 대가들의 서예·서화 작품 2000여 점과 한문으로 쓴 책 1200여 권이 벽과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말은 일하는 주말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그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합니다. 정겨운 벗들이 멀리서 찾아오고, 휴식을 위해 도시를 떠나온 모르는 손님과도 정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랍니다. ‘마음의 평화’가 있는 그의 아름다운 주말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일이 곧 놀이면서 즐거움

김종헌 전 사장이 북카페에 전시 중인 소지 강창원 선생의 작품 ‘鵬飛(붕비)’. 붕은 『장자』에 나오는 거대한 상상의 새로 ‘붕비’란 크게 분발해 도약하라는 뜻이다.

 주말 오전 5시. 소년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 오늘은 또 어떤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마음의 평화를 찾아 번잡한 서울 생활을 정리한 게 벌써 9년 전. 이곳의 생활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져라(日新又日新)’는 말처럼 하루하루 새롭고 기쁜 나날이다. 일찍 일어났다고 대도시처럼 아등바등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다. 음악으로 치면 안단테(조금 느리게)와 라르고(아주 느리게)의 중간쯤 되는 아다지오(느리게)가 내가 원하는 삶이다. 남들은 주말이 쉬는 날이라지만 카페 주인인 나는 일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행복하다.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내겐 일이 곧 놀이고 즐거움이다.

 오전 7시쯤 카페로 나온다. ‘임지헌(臨池軒)’이란 현판이 반갑게 맞아준다. 나를 심오한 서예와 한학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현역 최고령 서예가 소지(昭志) 강창원 선생의 작품이다. 원래 소지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울 인사동 서실 이름인데 고맙게도 내게 물려주셨다. 소지 선생과의 인연은 1971년 복학한 뒤 서예를 공부하던 고모를 따라 임지헌에 등록하면서 시작됐다. 열심히 서예를 익히려는 나를 소지 선생은 친아들처럼 대해주셨다. 내게 거량(居亮)이란 아호도 지어주셨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처럼 글 잘 짓고 제갈량처럼 총명하라는 뜻이다.

 ‘소지도인 강창원 서예기념관’을 겸하는 카페 안에는 소지 선생이 주신 귀중한 서예 작품이 많이 있다. 그중 붉은 바탕에 쓴 ‘亂石崩雲 驚濤裂岸(난석붕운 경도열안)’이란 작품은 엽서보다 조금 큰 종이에 인쇄해 카페를 찾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중국 송나라 때 문인 소동파의 ‘적벽회고’에 나오는 문구로 “부서진 바위는 구름을 뚫고, 놀란 파도는 강가를 치네”라는 뜻이다.

중국·일본 손님도 종종 찾아와

 주말에 출근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빵 반죽 만들기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내에게서 배운 솜씨다. 반죽은 며칠분을 한꺼번에 만들어 놓는다. 충분한 시간 저온에서 숙성·발효시키기 위해서다. 주재료는 2등급 유기농 통밀가루다. 2등급이라고 품질이 떨어진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그만큼 도정을 적게 했다는 뜻이다. 쌀도 현미가 건강식인 것처럼 밀도 도정을 적게 한 게 섬유질과 비타민이 풍부해서 좋다. 빵을 미리 굽진 않는다. 손님이 들어와 주문하면 그제야 반죽을 잘라 오븐에 넣는다. 따뜻한 밥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겐 갓 구워내 따뜻하면서 밥처럼 담백한 빵이 잘 맞는다. 얇고 길쭉한 막대 모양의 그리시니란 빵이 우리집의 명물이다.

 토요일 오전엔 특별한 손님들이 카페를 찾아온다. 6년 전 춘천으로 오면서 시작한 영어 공개강좌에 오는 사람들이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선 주로 무역일을 하며 영어로 먹고살았다. 수출역군이 곧 애국자이던 시절이었다. 그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물론 수강료는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공개강좌라 누구든지 와서 들을 수 있다. 많을 때는 수강생이 20~30명을 헤아렸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행복하다는 말처럼 나에겐 이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순간이다.

 교재는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중 한국편의 영문판이다. 외국인과 대화하려면 얘깃거리가 풍부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외국에 나갔을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보다 사적인 식사나 파티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어렵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영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인이 폭탄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어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외국인이라면 귀가 솔깃해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딱딱한 주제보다 유머가 섞인 부드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만국 공통이다.

 오후 10시쯤 문을 닫을 때까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평일에는 춘천 손님이 많지만 주말에는 서울·부산·광주·대전 등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같은 서울에 살 때는 보기 어려웠던 벗들도 자주 들른다.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다.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어도 마음으로는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낀다. 중국·일본 등 외국 손님도 드물지 않다.

 멀리서 찾아온 주말 손님들에겐 한 끼 식사 대접만으론 충분치 않다. 짧은 시간이지만 대도시를 떠나온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편안한 휴식과 정감 있는 대화다. 이들이 우리집에서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고 서예 작품을 감상하며 삶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카페 벽에 걸린 소지 선생의 작품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란 글처럼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말동무가 필요한 손님에겐 누구에게나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다.

 내가 쓴 책을 잘 읽었노라며 찾아오는 손님들도 더러 있다. 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분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중년 이후의 인생에 정말 필요한 것은 통장 잔고나 재테크 노하우가 아니라 진짜 자기의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꿈을 갖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현재를 충실히 살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3의 인생 시작하다

김종헌 전 사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강원도 춘천의 북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님을 맞다 틈틈이 시간이 나면 카페 한쪽 구석의 책상으로 몸을 옮긴다. 카스(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기기 위해서다.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달로 이젠 시골에 살아도 조금만 신경쓰면 최신 정보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엔가젯(Engadget) 같은 해외 IT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도 취미가 됐다. 나이를 먹었어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최신 기술동향을 열심히 따라가야 한다.

 지난달엔 드디어 ‘인생 3막’을 시작했다. 카페 운영은 점진적으로 젊은 사람에게 맡기고 남은 인생은 저술·강연과 수집품 정리에 집중할 생각이다. 원래는 자녀들이 카페를 물려받았으면 했다. 하지만 한창 직장에서 바쁘게 일할 나이의 자녀들은 그럴 처지가 못 됐다. 그래서 파트너를 구한다는 안내문을 만들어 메뉴판 뒤쪽에 끼워두고 인터넷 블로그에도 올렸다. 일주일 만에 토목회사에 다닌다는 최진영(29)씨가 찾아왔다. 대학에서 체육을 공부한 만능 스포츠맨이면서 다양한 사회경험도 갖고 있는 그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오자마자 젊은 감각으로 매장을 근사하게 바꿔놨다. 옛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미에 20대 청년의 패기가 합쳐지니 시너지 효과가 컸다. ‘상속’보다 좋은 ‘상조’의 파트너가 생겼으니 이젠 마음 놓고 ‘인생 3막’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

 불야성인 서울과 달리 이곳은 밤이 깊어질수록 조용해진다. 주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종로 토박이로 자란 나에겐 50년대의 서울을 떠오르게 하는 포근한 분위기다. 문 닫는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좋은 인연으로 만난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축원하면서.

◆소지 강창원 선생=한문을 흘려 쓰지 않고 단정하게 쓰는 해서(楷書)의 대가. 1918년 서울 태생으로 현역 최고령 서예가다. 성균관대·세종대 등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건너간 뒤에도 활발한 작품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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