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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상승, 마냥 기뻐할 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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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가 국가 신용등급을 올린 것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밝힌 반응이다. 정부·금융계 관계자도 마침내 일본·중국을 따라잡았다며 희색이 만면하다. 신용등급은 외환위기 때보다 12계단이나 올라 이젠 세계 아홉 번째로 높은 나라가 됐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연간 4억 달러의 이자 비용을 아끼게 됐고, 우리 제품·서비스에 대한 신뢰와 이미지도 높아질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마냥 호들갑 떨 일만은 아니다.

 국가 신용등급은 경제 상황을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채무이행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쉽게 말해 빚 갚을 능력이 나아졌다는 것이지, 실물경기가 좋아졌다는 뜻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수출엔진이 식어 가고 내수마저 움츠러들고 있다. 여기에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하우스푸어’로 상징되는 부동산 경기둔화도 큰 짐이다.

 신용등급 상승을 마냥 기뻐할 게 아니란 얘기다. 국가 신용등급은 올랐다지만 국내 기업은 같은 등급의 해외 기업에 비해 여전히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리고 있다. 북한 리스크 같은 지정학적 요인 등에 의한 저평가가 여전하다는 얘기다. 또 주가와 원화가치가 올랐다지만 이는 최근 발표한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에 힘입은 면이 크다.

 국가 신용등급 상승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채찍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상향을 계기로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더 키우고, 정부는 신용등급 상향의 온기가 서민들에게도 돌아가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자칫 신용등급 상승 이후 미국에서 풀린 돈이 한국으로 몰릴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 관리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경제 3위국 일본이 살아 있는 교훈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유지했던 일본은 장기불황에 빠져들면서 현재는 ‘A+’로 무려 4단계나 주저앉았다. 올랐던 신용등급이 다시 떨어지면 한국에 대한 평판은 일본보다 더 엉망이 될 것이다. 타산지석은 바로 이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