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용등급 상향’을 성장동력 발판 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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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달 무디스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3로 올린 데 이어 6일엔 피치가 AA-로, 14일에는 S&P가 A+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 A등급 국가 중 불과 한 달 사이에 신용등급이 일제히 올라간 유일한 나라가 됐다. 이들 3대 신용평가사들은 조금씩 다른 상향 조정 이유를 밝혔지만 대체로 건전한 재정상태,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은행의 대외 취약성 개선, 북한 리스크 감소 등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면 우선 외국에서 보다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 또한 우리 경제의 상대적 건전성이 널리 인정받으면서 눈에 안 보이는 부수적인 효과들도 누릴 수 있다.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여기에 기여한 이명박 정부의 노력을 평가하는 데도 인색할 필요는 없다. 이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신속히 벗어났으며, 정치권의 포퓰리즘 바람을 막는 데도 힘을 쏟았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한국 경제의 선방은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덕분에 외환위기·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와 달리 요즘 환율·주가·금리 등 금융지표들은 별반 흔들리는 조짐이 없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서울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용등급은 말 그대로 빚 갚을 능력을 따지는 척도(尺度)일 뿐이다. 신용등급이 오른다고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대외의존적인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에 얼마나 버텨낼지 걱정이다. 올 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주저앉고, ‘L자형 장기침체’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하우스 푸어’로 상징되는 부동산 가격 하락, 급증하는 공기업 부채 등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숙제들이다. 다행히 국가신용등급이 오르면 대외지급능력은 한결 나아지게 된다. 이제 이를 디딤돌 삼아 어떻게 꺼져가는 성장동력을 부추기고, 어떻게 신(新)성장산업을 발굴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실물경제 체력이 회복되고 민생경제에도 온기가 돌게 된다. 지금은 국가신용등급이 올랐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