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 트레이너 송재형씨가 말하는 손연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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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예쁨 받을 줄 아는 아이’.

 지난 2년간 손연재 선수를 가장 가까이서 봐온 송재형(46·사진) 송피지컬트레이닝 원장의 평이다. 송 원장은 손 선수의 전담 재활 트레이너다. 리듬체조는 유연성이 중요한 채점 기준이 되는 종목. 하루 수십 번씩 극한의 동작을 소화하는 손 선수는 잔부상과 근육통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이를 제때 풀어주고, 재활훈련을 적절히 병행해야 선수 생활을 건강하게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이 역할을 해주는 이가 송 원장이다. 송 원장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의 ‘드림팀’ 멤버이기도 했다.

 송 원장은 “연재는 무척 야무지다. 리듬체조는 체중 조절이 중요한 종목이다. 훈련량은 많은데 원하는 만큼 먹을 수가 없다. 연재는 이를 알아서 잘 조절한다”고 말했다.

 손연재가 러시아 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는 모스크바 노보고르스크 훈련장은 엄격한 분위기로 유명하다. 체중은 ‘그램(g) 단위’로 매일 체크한다.

 “7월 초 모스크바 훈련장에 일주일 정도 다녀왔어요. 올림픽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스트레스가 심할 때였어요. 연재는 내가 옆에서 밥을 먹기가 미안할 정도로 조금만 먹었죠. 그러다 제가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온 날 방문을 빼꼼히 열고 사과 하나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그날 연재의 저녁이었습니다.” 손 선수는 아직 10대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누구에게도 투정하지 않았다.

런던 올림픽 결선에서 곤봉 연기를 마친 뒤 관중들에게 화답하고 있는 손연재.

 송 원장은 런던 올림픽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으로 예선 둘째 날 곤봉 연기 도중 오른쪽 슈즈가 벗겨진 때를 떠올렸다. 송 원장은 “슈즈가 벗겨진 뒤 턴 동작이 하나 남아 있었어요. 슈즈가 없으면 턴을 할 때 훨씬 빡빡해요. 발목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상황이었죠.”

송 원장 스스로도 놀랐지만 손 선수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잔뜩 얼어붙은 상태로 곤봉 연기를 마치고 들어온 손 선수를 붙잡고 그는 “지나간 건 잊자. 아직 결선 진출까지 점수의 여유가 있다. 자신 있게 하라”고 격려했다. 손 선수는 남은 리본 연기를 실수 없이 완벽하게 마쳐 최종 6위로 결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예선 둘째 날 경기를 모두 마치고 오른쪽 발목을 만져보니 예상대로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다음 날 결선은 연재가 그토록 바라던 무대였습니다. 적어도 결선 하루만큼은 발목이 버틸 수 있도록 그날 저녁 재활훈련에 온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송 원장은 런던에 입성하기 전 영국 셰필드 훈련 도중 생일을 맞았다. 타지인 데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그날 오후 손 선수가 어떻게 알았는지 컵케이크 4개와 초를 준비해 깜짝 파티를 열어줬다. 송 원장은 “그때 참 고마웠다. 연재는 애교도 많고 세심하다. 예쁨을 받을 줄 아는 아이”라고 귀띔했다.

 손 선수의 심리 상담을 담당하는 조수경 스포츠심리학 박사의 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태환의 심리 상담을 맡아온 조 박사는 “정상급 선수들은 서로 비슷한 면이 있다.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담 내용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빠르다”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해오던 상담 횟수가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는 부쩍 늘었다”며 “한창 스트레스를 받던 때였는데, 영국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 연재가 ‘선생님, 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때 올림픽을 잘 치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전했다.

 손 선수를 어린 시절부터 봐온 김지영 대한체조협회 리듬체조 강화위원장은 “네댓 살 땐 키도 작고 볼이 통통했다. 그래도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음악을 틀어주면 곧잘 연기했고, 선생님들 앞에서도 어려워하지 않고 말을 잘했다”고 회상했다.

 표정 연기가 풍부한 손 선수는 광고 촬영 현장에서도 인기가 높다. 광고 캐스팅 전문가인 고송아 캐스팅런 대표는 “연재는 웃기만 해도 광고가 된다. 리듬체조 실력이 느는 것에 비례해 광고 찍을 때의 연기력도 좋아지는 것 같다. 광고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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