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정치적 영향력보다 노동자의 행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고용불안, 소득 양극화, 근로빈곤계층 증가라는 세 가지 현상은 항상 노동문제의 쟁점이 되어 왔다. 지난 20년 가까이 진행돼 온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우리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다. 그 이면에는 세계화, 기술혁신, 인구구조의 변화 등 문명사적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극복할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법을 찾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부족한 것이 진짜 문제다.

 어두운 노동의 미래는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부가 해결해야 할 국가적인 문제다. 노동환경이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라 기업과 근로자가 개별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각자 행복을 추구하고 이익을 키우기 위한 최선의 행동을 하더라도 전체로 보면 불행해지고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자신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소득을 늘리려고 발버둥치는 노력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흔드는 비극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심각하다. 노동시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와 고용안정의 큰 격차로 단절돼 있기 때문이다. 또 노동조합의 혜택이 대기업과 정규직에 심하게 쏠려 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 이것이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지금껏 노동계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배려한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가 악화해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노동계조차 공유하기 어렵다. 반면에 우리나라 노동계의 정치활동은 활발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이 특정 정당을 무조건 지지하면 근로자들의 권익향상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정파의 이익에 노동계가 끌려가는 것이다. 실제로 노사 갈등이나 노정 갈등은 관성적으로 정치적 투쟁거리로 키워졌고, 순수한 파업도 툭하면 정치 파업으로 변질했다. 이러다 보니 일반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의 정치주의에 반발해 왔다. 이것은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는 독립노조의 증가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장인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의 경우처럼 고임금을 받으면서 무리한 파업을 벌이는 데 대한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대부분의 근로자도 정치주의에 휩쓸려 명분을 잃은 기존 노조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 부품업체인 SJM처럼 기업이 착각을 하고 불법 파견, 불법 대체근로 투입과 같은 구태의연한 노사관계로 되돌아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는데, 산업현장에서 노사의 힘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정부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의 미래를 밝히는 길은 노동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있다. 이것은 정치의 몫이다. 선거를 통해 노동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 대선이 석 달 정도 남았다. 노동계의 정치활동 공간도 그만큼 커지게 될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역대 어떤 선거보다도 노동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대선의 쟁점이 되고 있는 소득 양극화는 노동의 문제이고, 경제민주화도 논의가 제대로 방향을 잡으면 노동의 문제로 귀착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근로자들의 행복보다 자신의 입지나 정치적 영향력을 챙기는 데 급급하면 노동의 미래는 나아질 수 없다. 노동계는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세계화, 기술혁신, 인구구조의 변화 등 노동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인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치활동에 치우치기보다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적극 활용해 실질적인 방안을 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