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헌재 ‘유럽 구출 프로젝트’ 승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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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유럽재정안정기금 비준 중단 가처분신청 기각을 발표하는 독일 헌재 소장의 모습이 생중계되는 모니터 앞에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날 독일 주가지수는 가파르게 올랐다. [프랑크푸르트 AP=연합뉴스]

유로존 상설 구제금융인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의 설립을 가로막았던 중대 걸림돌이 제거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이 성사될 가능성도 커졌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6일 ESM의 비준 중단을 요구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안드레아스 포스쿨레(49) 헌법재판소장은 이날 발표한 결정문에서 “헌법재판관들이 ESM과 신재정협약이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따라서 비준절차를 중단해 달라는 요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독일 의회를 통과해 대통령 서명만 남겨두고 있는 ESM과 재정협약의 비준이 곧 이뤄질 전망이다. 애초 ESM은 지난 7월 말 설립될 예정이었다. 독일은 7000억 유로(약 1014조원)의 ESM 중 최대 몫인 1900억 유로를 부담한다. 그러나 헌재의 심리 때문에 두 달 연기됐다.

 이날 헌재 결정엔 조건이 달려 있다. 포스쿨레 소장은 “독일이 ESM에 출자할 수 있는 한도가 불분명하다”며 “의회가 비준 절차를 마치기 전에 출자 예정액인 1900억 유로를 상한선으로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탈리아·스페인 부채 규모가 2조6000억 유로에 이르기 때문에 유로존은 ESM의 증액이 불가피하다”며 “독일 헌재가 그 길을 차단해 ESM의 구제능력이 앞으로 시장에서 의심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결 직후 보도했다. 실제 ESM 등 구제금융펀드의 자산은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증액됐다.

 헌재는 이날 결정과는 별도로 ESM과 재정협약 위헌심리를 계속 벌인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은 “헌재가 이르면 내년 1월 중에 위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결정은 ESM 및 재정협약이 합헌임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헌재가 내년에 ESM 등이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결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독일 우파 의원 등은 “ESM 출자와 재정협약은 헌법을 바꿔야 하는 사안이어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며 올 3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유럽 금융시장은 독일 헌재 결정을 반겼다. 이날 보합선에서 출발했던 독일 주가는 헌재 발표 직후 약 1% 상승했다. 하락하던 영국과 프랑스 주가도 오름세로 돌아섰다. 채권시장도 강세를 보였다.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만기 수익률)가 0.1%포인트 정도 내려 연 5.5% 선에 이르렀다. 올 5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달 6일 마리오 드라기(65) ECB 총재는 “ESM 등 유럽 구제금융펀드들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을 전제로 ECB가 위기국 국채를 무제한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비준 중단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다면 ECB 국채 매입이 ESM 위헌 여부가 결정될 내년 1월까지 불가능할 뻔했던 것이다.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

유로존이 임시 구제금융펀드인 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체할 목적으로 설립한 상설 구제금융펀드. 한도는 7000억 유로지만 실제 지원 가능한 자금은 5000억 유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지분율에 따라 17개 유로존 회원국이 분담한다. 독일의 몫이 27%(1900억 유로)로 가장 크다. 애초 올 7월에 출범 예정이었으나 독일 내 헌법소원 때문에 설립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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