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급조된 중소기업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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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산업부 기자

지난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대책회의' 결과에 대해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모두 씁쓸한 표정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기업 총수들은 '중소기업을 키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살피고 그 자리에서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지원책을 줄줄이 내놨다. 그러나 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어차피 대기업 어음은 금융창구에 가면 현금으로 척척 바꿔준다"며 "현금결제율을 높인다며 은근슬쩍 납품가를 할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대기업의 현금결제 지원책을 꼬집었다.

대기업들도 정부와 맞장구는 쳤지만 내심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기업을 몰아세우는 측면도 없지 않다"며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자연스럽게 공생하는 분위기의 조성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이 대통령과 만나면 뭔가를 내놓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일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고 이 관계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히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책이 급조될 수밖에 없고 때론 구호에 그치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올해 안에 다시 만나 이번에 얘기한 것을 재검토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자"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정부가 발표한 '성과 공유제'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예컨대 중소기업이 노력해 제품원가를 개당 100원 낮출 경우 대기업이 납품받으면서 100원을 다 깎지 않고 50원만 깎는 식으로 이익을 서로 나눠 갖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에서 소비자의 이익은 외면당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은 나라 경제의 뿌리여서 돌보고 키워야 한다. 그래야 이들의 부품을 사서 제품을 만드는 대기업도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얼굴을 맞대 현실에 맞는 상생(相生) 방안을 찾고 정부는 이 방안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뭔지를 먼저 연구하는 것이 중소기업 지원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길이 아닐까.

권혁주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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