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장관까지 거짓말 드러난 유전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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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 보고받았던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유전 사업이 국장 전결 사항이라 자신은 무관하다던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의 말이 검찰 수사로 뒤집히더니 국무위원인 산자부 장관조차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 장관은 지난 10일 비서관을 통해 "신광순 전 철도공사 사장을 만난 적도, 그에게서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신 전 사장이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8월 산자부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직후였다. 그러던 이 장관이 그제 저녁 검찰에 나와선 지난해 9월 김 전 차관과 철도청장 직무대리이던 신씨에게서 유전 사업 관련 보고를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며칠 전까지 생각나지 않던 일이 검찰청에 들어가면 기억이 되살아나는가.

산자부가 철도공사의 유전 개발 사업 제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켜 준 것도 석연치 않다. 산자부 측은 철도공사로부터 전문가를 영입해 사업을 추진 중이란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 대상은 석유공사조차 사업성이 없다고 평가를 내린 사업이다. 그런데도 전문가를 영입했다는 말만 듣고 하루 만에 사업 제안을 처리해 줬다. 그래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유전 사업이 범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추진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공직자들의 잇따른 거짓말이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부실 감사도 오히려 의혹만 키웠다. 특히 핵심 인물인 허문석씨에 대해 그가 외국 국적자란 이유로 출국금지 조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외국인의 경우 법무부에 출국정지를 요청할 수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으니 그의 해외 도피를 방조한 셈이다.

검찰은 공직자들이 거짓말을 해가며 보호하려는 인물이나 대상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의 어느 선까지 이 사업을 알고 있었는지도 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