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에 참정권 허용 쿠웨이트 '파란색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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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쿠웨이트 의회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44년 만에 여성의 총선 투표권과 입후보권을 인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중동에선 사우디아라비아만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여성 정치 후진국'으로 남게 됐다.

◆ 여성 참정권 인정=쿠웨이트 의회는 16일 찬성 35, 반대 23, 기권 1표로 여성의 포괄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쿠웨이트 여성들은 2007년 치러지는 총선과 지방선거에 입후보하고 투표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쿠웨이트 인구 약 96만 명 가운데 기존 유권자(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21세 남성)는 14만5000여 명(15%)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으로 유권자는 35만 명(37%)으로 늘게 됐다.

여성운동가 롤라 다슈티 여사는 "44년 만에 쟁취한 이 정치적 권리로 여성의 목소리가 국가운영에 반영될 수 있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된 쿠웨이트 의회가 결국 여성들의 요구에 굴복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 "개정안에는 여성 유권자와 입후보자가 이슬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부속조항이 삽입됐지만 보수 이슬람 진영을 의식한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 '파란색 봉기'=여성 운동가들이 지난 수년 동안 참정권 쟁취를 위해 싸워온 결과다. 쿠웨이트 국왕도 1999년 여성에게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칙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참정권 요구는 "이슬람법에 따라 여성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전통 부족사회와 보수 이슬람계 의원들에 의해 번번이 좌절돼 왔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여성들이 한층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열혈 여성들이 대학가와 거리에서 파란색 머리띠를 두르고, 플래카드를 흔들면서 '우리에게도 권리를 달라'고 외쳤다. '파란색 봉기'라고 이름 붙여진 이들의 시위는 쿠웨이트의 보수 이슬람 세력을 긴장케 했다. 일부 보수파 이슬람계 의원은 강력한 시위진압까지 요구했지만 결국 여성들에게 손을 들게 됐다. 이렇게 된 데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내세운 '중동 민주화 정책'이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쿠웨이트 정부가 올 들어 개정안을 적극 지지한 것은 미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편 이란은 63년부터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오만은 97년, 카타르는 99년, 바레인은 2002년에 도입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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