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어처구니없는 “학교폭력기록 삭제”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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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엊그제 103개 고교 교장 등을 소집해 “고3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대학에 제공할 때 학교폭력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들 고교엔 학교폭력과 연루된 고3 학생들이 있고, 이들은 출석정지, 사회봉사, 특별교육 등의 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김 교육감의 지시대로 된다면 경기도 고교의 학생부 기록엔 폭력 관련 기록이 말끔히 사라진 채 대학에 제출된다.

 김 교육감은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근거로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재에 반대했다. 가해학생에게 씻을 수 없는 낙인효과를 끼치므로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 2월 확정된 학교폭력종합대책에 따라 기록을 남기라고 지시하는 교육과학기술부에 맞서다 특별 감사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반발해 삭제를 강행한 것이다. 기록 삭제까지 요구하는 것은 분명 상식의 범위를 넘어섰다.

 학생부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활동을 기록하는 법적인 장부다. 그 기록은 교사의 객관적 서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이 기록을 보는 다른 기관들이 학교의 기록을 통해 학교와 교사를 신뢰할 수 있다. 교내 자치기구인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려 가해학생에 대해 조치를 취한 사실이 있는데도 이런 객관적인 기록을 삭제하라는 김 교육감의 지시는 폭력이란 얼룩을 지우라고 요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정확한 대학입시 사정을 위해서도 정확한 기록은 필요하다. 대학들도 경기·강원·전북 등 소위 진보교육감 지역의 일부 고교가 폭력 기록을 삭제하거나 아예 기재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대학총장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고교의 학생부 기록을 면밀히 살피고, 필요할 경우 직접 고교를 상대로 확인 조사까지 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일선 교육현장은 교육감의 삭제 지시와 교육부의 기록 지시로 혼선을 빚고 있다. 지금이라도 김 교육감은 기록 삭제 지시를 철회하는 게 맞다. 그가 진정으로 교육자라면 가해학생들이 폭력 사건 이후 학교의 노력으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기록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