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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 원하는 대로 하면 분만 행복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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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 2월 경기 고양시 동원산부인과에서 인권분만 방식으로 아이를 낳은 산모. 인권분만실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배 위에 아기를 올려놓고 심장소리를 듣게 한 뒤 엄마 젖을 빨린다. [중앙포토]

올해 4월 10일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 동원산부인과 분만실. 은은한 조명 아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침실 같은 이곳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7시간 진통 끝에 노윤주(34·서울 연희동)씨의 넷째 딸이 태어났다. 촉촉하게 젖은 노씨의 눈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아직 탯줄을 자르지도 않은 아기가 세차게 젖을 빠는 모습에 노씨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노씨는 “내가 진통하는 중에도 의료진은 아기를 위해 속삭이듯 말을 건네주고 때로는 유머를 섞어 가며 웃음을 줬다”며 “이런 분만실 분위기 덕분에 아이를 넷이나 낳을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침대 위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첫아이를 낳았던 기억을 지우고 싶어 둘째 아이 때부터 이 병원을 찾았다.

 임산부와 아기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권분만’이 젊은 부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인권분만연구회 회장인 동원산부인과 김상현(62) 원장은 “임신부가 원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도와주고 태아에게 시각·청각·촉각적인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는 게 인권분만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인권분만을 선언한 전국 11개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의사의 편의보다는 임산부와 아기에게 편안한 환경을 중요시한다. 임신부는 꼭 침대에 누워 있을 필요가 없다. 앉거나 서서 혹은 욕조 안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제왕절개로 첫 출산을 했던 임신부도 이들 병원에선 자연분만을 시도할 수 있게 배려한다. 막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를 찰싹 때려서 일부러 울리지도 않는다. 김 원장은 “(때리는 행위는) 아기가 폐 호흡을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건데 폭력적이고 의학적으로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갓 태어나 5분간 탯줄로 호흡하며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게 하면 아기가 편안해한다”고 말했다. 2000년 출범한 인권분만연구회는 이 같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병원만 회원으로 받고 있다.

 인권분만은 프레데리크 르봐이예와 미셸 오당 같은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들이 주장한 개념이다. 의료진 위주인 근대의학의 부정적인 면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의사보다 조산사가 주도적으로 아이를 받는 영국도 이런 인권분만의 분위기가 강하다. 2010년 영국 런던에서 딸을 낳은 강현진(35)씨는 “조산사 2명이 끊임없이 마사지해 주고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도와줬다”며 “응급상황에 대비해 의사는 분만실 옆방에 대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이 엉덩이를 왜 때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끔찍한(horrible) 일을 왜 하느냐’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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