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그녀’는 아름답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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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얼마 전 트위터에서 야당의 한 정치인이 상대당 여성 대선주자를 ‘그년’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문제가 되자 ‘그년’은 ‘그녀는’의 오타라고 발뺌하기도 했다. ‘그녀’와 ‘그년’이 철자가 비슷하고 ‘그녀는’을 빨리 발음하면 ‘그년은’으로 들리기도 하므로 이런 해명이 언뜻 그럴듯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란 말은 다소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그녀’의 모태는 일본어다. 일찍이 서양 문학을 접한 일본 문인들은 영어의 ‘she’를 옮기는 말로 ‘가노조(彼女)’란 단어를 만들어 낸다. ‘그 남자’에 해당하는 ‘가레(彼)’에 ‘여자’를 뜻하는 ‘녀(女)’를 붙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he’는 ‘피(彼)’, ‘she’는 ‘피녀(彼女)’로 번역했다.

 1920년대 일본에 유학하던 김동인은 우리말에도 영어의 ‘she’에 해당하는 여성 대명사가 없음을 아쉬워하다 일본의 ‘彼女’를 본떠 ‘그녀’라는 말을 만들어 낸다. 이리하여 자신의 소설에서 ‘그녀’를 즐겨 사용했고 다른 문인들도 따라 쓰게 된다. 50년대에 이르면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이를 두고 논란이 인다. 그 바탕에는 우리말에선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그’를 쓰기 때문에 ‘그녀’가 필요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녀’는 ‘우리말(그)+한자어(女)’로, 이렇게 결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대, 그이, 그분, 그놈’ 등 ‘그’는 순우리말과 결합한다. ‘그남(그男)’을 가정해 보면 ‘그녀’가 얼마나 어설픈지 알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당시 ‘그녀’에 반대하는 문인이나 학자들은 대체할 수 있는 말을 저마다 내놓았다. ‘어미·할미’의 ‘미’를 딴 ‘그미’, ‘엄매·할매’의 ‘매’를 딴 ‘그매’, ‘언니·어머니’의 ‘니’를 딴 ‘그니’에서부터 ‘그히’ ‘그냐’ ‘그네’ ‘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느 것도 세를 얻진 못했으나 ‘그녀’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자임이 드러난 글에서는 ‘그’로 써도 무방하다. ‘그 여자’로 써도 되고 ‘계집애, 소녀, 처녀, 아주머니, 여인, 부인, 여사’ 등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말이 많다. ‘그녀’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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