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춤꾼이 묻는다.당신은 무얼 갈망하냐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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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호 24면

프리랜서 사진작가 마르코는 이제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다. 가까스로 찾았다고 생각한 천생연분이 그만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리디아는 여자 투우사였다. 그녀는 시합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도심을 방황하던 마르코는 피나 바우슈의 무용극 ‘카페 뮐러’를 보러 간다. 작품을 보면서 마르코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무용극 속의 인간 군상들이 너무나 고독하고 안쓰러워서, 자신의 처지가 가엾고 불쌍해서, 무엇보다 리디아가 너무나 안됐어서. ‘카페 뮐러’가 끝난 후 마르코는 이제 리디아에게 돌아가 ‘그녀에게’ 말을 걸 참이다.

빔 벤더스의 영화 ‘피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역작 ‘그녀에게’는 세계 최고의 안무가 피나 바우슈와의 협업으로 더욱 빛을 발한 작품이다. ‘그녀에게’에서 ‘카페 뮐러’의 장면은 핵심 중 핵심이다. ‘카페 뮐러’는 인간의 몸짓이라는 것이 바야흐로 인간 그 자체임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만, 대개는 ‘그녀에게’의 마르코처럼 무엇을 얘기해야 할지,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 줘야 할지를 잘 알지 못한다. ‘카페 뮐러’와 피나 바우슈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육체를 통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행위, 그것이 무용으로 불리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화 ‘피나’는 피나 바우슈의 전기 다큐멘터리다. 그녀는 2009년, 일흔의 삶을 마감했다.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가 연출을 맡았다. 그는 이번 다큐를 놓고 때론 많은 것을 고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전혀 망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단 전기 다큐멘터리가 흔히 시도하는 편년체적 서술의 진부함에 빠지지 않았다. 피나가 언제 태어났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또 어떤 방식으로 성공했는지, 그녀의 예술혼과 삶의 철학은 무엇이었는지 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빔 벤더스답다.

영화의 첫 장면은 피나 바우슈의 전설적인 작품 ‘봄의 제전’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한마디로 공연의 연속이다. 중간중간의 이음새로 피나 바우슈의 극단인 탄츠테아터 단원들의 인터뷰가 끼어드는 정도다. 그런데 이 인터뷰가 나름 걸작이다. 인터뷰이인 단원들의 목소리는 보이스 오버로 들린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속으로만 얘기한다. 그들은 때론 슬프고 고독하게, 때론 처절한 표정으로, 아니면 아스라한 추억의 표정으로 자신과 피나 바우슈의 관계를 털어놓는다. 말을 하지 않는 인터뷰. 빔 벤더스는 이들이 궁극의 춤꾼이며,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게 하는 건 결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특히 피나 바우슈의 미학을 전하는 데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런데 이 인터뷰 장면들이야말로 다큐멘터리 ‘피나’의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부분이다. 단원들은 물론 이 다큐를 보는 사람들 모두로 하여금 피나 바우슈를 추억하게 한다. 그리워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1시간40여 분간 그동안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피나 바우슈의 ‘전부’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어떻게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훌륭하게 뒤섞어 놨는지 연극과 무용, 오페라와 팝음악, 심지어 민요까지 그 모두가 사실은 한몸 태생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지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된다.

피나 바우슈는 단원들에게 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당신은 무엇을 갈망하는가? 왜 갈망하는가?”
빔 벤더스가 담아낸 피나 바우슈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들은 왜 이다지도 갈망하지 않는가?” 세상의 변화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 중 다수는 꿈을 잃었다. 빔 벤더스의 ‘피나’와 주인공 피나 바우슈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꿈을 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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