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으로 하우스푸어 해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새누리당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갚느라 허덕이는 사람들, 즉 ‘하우스푸어’에게 나랏돈을 직접 쏟아붓는 제도를 곧 발표한다. 이들의 집을 정부 재정으로 사 준 뒤 그대로 눌러 살 수 있게 전·월세로 임대해 주는 식이다. 나중에 살림이 펴면 살던 집을 우선적으로 되살 수 있는 환매(還買) 권리도 함께 준다는 것이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값비싼 건물을 매각한 뒤 임대해 사용하는 기업들의 ‘세일 앤드 리스백’ 기법을 민간주택에 그대로 적용한 방식이다.

 새누리당 하우스푸어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30일 “한계주택의 공적 매입을 포함한 부동산 거래 활성화대책 14개 안을 최근 이한구 원내대표에게 보고했다”며 “다음 주 당정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합의를 이룬 최종안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직접 발표한다고 한다.

 ‘공적 매입 뒤 임대 전환’은 부실기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구제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영권을 내놓아야 하는 기업 경영주와는 달리 집 소유주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리지 않는다는 게 다르다. 이 때문에 형평성과 현실성을 두고 찬반 양론이 비등하고 있다.

 새누리당을 비롯해 찬성하는 쪽은 경기 활성화 효과를 제시한다. ‘하우스푸어’의 대부분은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만 덜면 상당한 구매력을 발휘할 중산층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재정을 투입하기보다 이들을 지원함으로써 민간 소비를 직접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 ‘하우스푸어’의 구매력이 살아나면 내수경기 자극효과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게 찬성론자의 전망이다.

 하지만 반론도 강하다. 우선 재원 확보방안이 마땅치 않다. 새누리당도 이를 두고 가장 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하우스푸어’를 150만 가구가량으로 추정한다. 가구당 집값을 2억원으로 잡아도 300조원이 든다. 우리 정부 한 해 예산과 맞먹는다. 재원 마련의 현실성이 약한 이유다. TF 관계자는 “모든 하우스푸어를 지원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정부와 협의해 현실 가능한 예산 범위 내에서 하우스푸어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대책을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평성 논란도 있다. 아예 집이 없는 사람, 신용대출이나 학자금대출 때문에 어려운 사람 등과 차별적인 혜택을 줄 사회적 명분이 약하다. 이 때문에 사회 각층에서 ‘나도 어려우니 나랏돈으로 도와달라’는 요구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 정책의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수혜 범위, 매입가격의 결정 기준, 임대료 산정, 환매 조건 등 세부적으로 중요한 기준이 하나도 정해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현대경제연구소 유병규 본부장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취지는 좋으나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대출받은 ‘하우스푸어’나 대출해 준 은행 모두에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아직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