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5세에 끌려갔던 강일출 할머니 “위안부, 나 이상의 증거가 어딨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강일출 할머니

“경북 상주 곶감집 귀염둥이 딸인 내가 열다섯에 중국 지린(吉林)시 위안소에 끌려가 4년을 살아냈어요. 2000년에야 귀국했는데, 나 이상의 증거가 어딨어. 그런데도 강제연행 사실이 없다니, 그들이 사람인가….”

 29일 낮 12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요시위’가 벌어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분홍 모자를 쓴 강일출(85) 할머니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1037회를 이어온 집회지만 이번엔 더 특별했다. 이날은 다름아닌 경술국치일(102주년)이다. 또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결정을 내린 지 1년이 되는 날(30일)을 앞뒀다. 게다가 일본에선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하는 정치인의 망언이 잇따르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요양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강 할머니는 이날 오전 퇴촌우체국에서 총 724명의 일본 정치인에게 나눔의 집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장을 처음 발송하고 오는 참이었다. 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이 수신인이다.

 시위 현장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과 나눔의 집 할머니 5명이 부축을 받으며 대사관 맞은편 소녀상 옆에 앉았다. 박옥선(89) 할머니는 “정부에서 독도 문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지난해 헌재 판결 이후 1년간 우리를 위해선 뭘 했느냐”며 “나도 죽고 나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또 3월 일본이 보상 중재안을 낸 데 대해선 “일본은 돈으로 해결하려 하지 사과할 생각은 없다”며 “말만 번지르르 할 게 아니라 우리를 직접 찾아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인성 망막황반증으로 앞이 잘 안 보여 선글라스를 쓴 김복동(87) 할머니는 “억울하게 당한 늙은이의 한을 풀지 않으면 일본도 재앙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20만 명이 넘는 위안부 피해자 중 현재 생존자는 60명뿐이다.

 사이버시위를 이끄는 트위터 부대와 영화 ‘두 개의 문’의 김일란 감독 등 200여 명도 동참했다. 일본 에히메대 학생 8명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와다 도시히로 교수가 이끄는 ‘평화법수업’ 수강생들로 올해가 네 번째 방문이다. 처음 한국에 왔다는 1학년 유지 아오이(19)는 “한국이 위험한데 왜 가느냐고 주위에서 말렸지만 평화 공존을 위해선 양국의 역사와 환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는 대부분 모르는데 직접 와보니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국, 중재 회부 검토=지난해 8월 30일 헌재가 ‘한·일 간에 해석상 분쟁이 있는 문제를 규정된 절차에 따라 정부가 해결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뒤 외교통상부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 3조에 따라 일본에 양자협의를 제안했다. 지난해 8, 11월 두 차례다. 3조 1항에는 협정 해석을 놓고 분쟁이 생기면 우선 외교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2항에는 협상에 실패할 경우 중재에 부치도록 돼 있다.

 일본은 아직 회신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중재 회부를 검토 중이지만 제안 시점은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중재가 일본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강제력은 없다. 김영원 한·일 청구권협정 전담대사는 “중재 절차를 빨리 하기보다는 원하는 목적 달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제안 시점을 신중히 정하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